같은 처지에 뼈 깎는 자구노력 내놨지만 수장 운명은 엇갈려
국내 대표 에너지 공기업이면서 '재무위기'라는 같은 처지에 놓인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뼈를 깎는 자구안을 내놨다.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앞두고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한 두 공사의 '고통 분담' 차원이다. 같은 처지라지만 양사 수장의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한전 사장은 여권의 사퇴 압박을 못 이겨 사의를 표명했고, 현 정부에서 임명된 가스공사 사장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강력한 경영 의지를 내비쳤다.
14일 정부 등에 따르면 한전과 가스공사는 올해 초 20조1000억 원, 14조 원의 자구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요금 인상 결정에 대한 국민 여론 악화 등 후폭풍을 의식한 정치권은 이 같은 자구안이 국민 요구에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며 추가 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한전과 가스공사는 이달 12일 각각 25조7000억 원, 15조4000억 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다.
한전은 알짜 자산으로 꼽히는 서울의 여의도 남서울본부를 매각하고 임직원 임금 동결, 조직 축소, 인력 감축에다 전력 설비 투자건설 시기를 뒤로 미뤄 2026년까지 1조3000억 원을 절감하겠다는 내용까지 담은 쥐어짜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았다.
가스공사 역시 2급 이상 임직원의 올해 임금 인상분 전부를 반납하고 조직 슬림화와 공급관리소 스마트화 등을 통한 운영비용 절감, 프로농구단 운영비 절감 등 뼈를 깎는 자구 계획을 수립했다.
누적적자가 45조 원대에 달하는 한전과 11조 원이 넘는 미수금을 기록 중인 가스공사로서는 전기·가스 요금 정상화라는 해결 방안을 시도하기 전 보일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내놓은 것이다.
재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양 사의 노력은 같았지만, 수장의 운명은 완전히 엇갈렸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자구안 발표와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정 사장의 사퇴 수순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여권이 그간 전 정부 때 임명된 정 사장이 한전의 경영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정 사장을 향해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특히 그는 "한전 사장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지낸 정 사장은 2021년 5월 한전 사장으로 임명됐으나, 내년 5월까지인 3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그간 한전의 재무 위기 극복 문제를 놓고 여당에서는 정 사장을 불편해하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일례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출국 직전에 최종 명단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가스공사의 위기 극복의 책임자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최 사장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의원과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에너지 분야 비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난방비 폭탄'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터졌음에도 건재하게 사장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최 사장은 자구안을 발표하며 "가스공사는 앞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강도 높은 자구노력 이행에 총력을 기울여 국민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공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해 강력한 경영 의지를 밝혔다.
한편, 정 사장의 사퇴로 전력 그룹사 사장들의 거취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쏠린다. 전력 그룹사 사장단의 취임 시기는 정 사장과 크게 차이가 없다.
최익수 한전원자력연료 사장은 2021년 3월에 취임했으며 김장현 한전KDN 사장은 4월, 김성암 한국전력기술 사장은 5월, 김홍연 한전KPS 사장은 6월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