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사장은 이날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초 올해 영화제를 끝내고 2023년을 끝으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언론에 밝혔지만, 이번 사태로 조기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의 임기는 2026년까지다.
이 이사장은 “이달 31일께 허 집행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면서 “이 자리에서 그의 복귀를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허 위원장 사표는 수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9일 임시총회를 열고 조종국 운영위원장의 선임을 결정한 바 있다. 허 집행위원장이 프로그램 기획과 감독 발굴 등 영화제의 주된 행사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신임 운영위원장에게는 연간 100억 원 이상을 집행하는 조직의 예산 관리나 운영 등의 실무를 분담한다고 설명했다.
발표 이틀 뒤인 11일 허 위원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하자 영화계 일각에서는 ‘권한 분산’을 의미하는 조 운영위원장 선임이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화제를 불과 5개월 앞두고 한창 준비에 매진해야 할 집행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한 것이 ‘인사 잡음’의 연장선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는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집행위원장이 행정이나 예산 부분에 관여할 수 없다면, 영화제의 실권은 사실상 이사장 측근인 운영위원장이 쥐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문제를 짚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내부에서는 ‘난감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허 집행위원장이 조 운영위원장 선임 건에 대해서 사전에 모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영화제 한 관계자는 “(9일 열린 임시총회는) 이사회에서 논의된 안건을 집행위원장이 상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허 집행위원장도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조 운영위원장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영화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총회에서 결의로 이뤄진 인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다음 이사회에서 사퇴 문제를 포함한 모든 논의를 논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해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다.
당장 16일 개막하는 제76회 칸영화제에는 허 집행위원장과 이 이사장 모두 불참할 예정이어서 국내 최대 영화제 주최측의 수장 자리가 모두 공석이 될 예정이다. 권역 담당 프로그래머와 실무진이 참석하지만 해외 영화인과의 네트워킹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월 5일 개막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준비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오래 지켜봐온 한 영화인은 이날 “코로나19 팬데믹 중간에 집행위원장으로 들어와 (침체된) 영화제를 영화제다운 모습으로 리셋한 게 허 집행위원장”이라면서 “그를 잃는 건 영화제로서는 대단히 큰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