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째 되는 날인 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반복되는 재난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불평등을 막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피해 복구 및 추모 사업 등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12일 인권위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안전 관리에 필요한 인권 기준과 피해자 권리 및 국가의 의무 등을 골자로 한 ‘재난 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및 광역지자치단체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 시·도 안전관리계획, 시·군·구 안전관리계획 수립지침에 포함해 인권에 기반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재난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반복되는 가운데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심화하고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 피해자 및 유가족의 권리 보장과 피해 복구를 촉구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은 재난 피해자가 수동적인 지원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고 규정한다. 가이드라인은 “재난에 대한 지원은 시혜나 박애가 아닌 피해자의 권리이므로 재난 관리 주체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 행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특히 “재난 피해자를 애도·추모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인정이자 재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의례에 관한 권리다. 재난 피해자가 원할 경우 국가 및 지자체는 기억 및 추모에 필요한 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태원 참사 당일 근무자들이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이 ‘사람이 많아 혼잡하다’는 민원에도 대통령 비방 전단지 제거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전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배성중) 주재로 박 구청장 및 유승재 전 부구청장 등 4명에 대한 업무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 첫 공판이 열렸다.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용산구청 6급 공무원 조원재 주무관은 “재난 신고가 들어오면 절차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전에 핼러윈 참사에 대비한 교육이나 지시를 받은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조 주무관은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10월 29일 당직사령으로 근무하며 “오후 8~9시 이태원로 일대 도로에 사람이 많다는 민원을 보고받았지만 구청장 비서실장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해 현장에 나가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구청장 지시라고 말한 적이 없다”라고 반박하자 조 주무관은 “새벽에 전단지 제거를 하겠다고 하니 비서실장이 구청장님 지시사항이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조 주무관은 “비서실장이 구청장 지시사항이라고 했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당일 밤 전단지 제거 작업에 투입된 당직 근무자 2명에는 재난관리 담당 근무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구청장이 참사 당일 오후 8시 59분 비서실 직원들 단체 대화방에 ‘집회 현장으로 가 전단지를 수거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당일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윤 대통령 비판 전단을 떼기 위함이었다.
박 구청장은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상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정하게 운영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1월 20일 구속 기소됐다. 현장 도착시간 등을 허위로 기재, 부실 대응을 감추려 한 행동으로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도 받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두 번째 재판은 다음 달 26일 오후 2시 30분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