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8원, 도시가스 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인상됐는데요. 기존 요금 수준에서 각각 5.3% 인상됐습니다. 4인 가족 평균량으로 살피면 한 달 전기요금은 약 3000원, 가스요금은 4400원 정도 더 부담하게 되는데요. 즉 4인 가족은 전보다 월평균 7400원가량을 더 내야 하는 거죠.
정부는 이번 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합니다. 2021년 이후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45조 원에 달하면서 지난 1분기 전기요금을 13.1원 인상했지만, 물가 상승 우려와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해 2분기 전기요금 조정을 미루다가 이날 ‘소폭’ 인상을 결정했다는 건데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전기·가스요금 인상 방안을 발표하며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며 “에너지 공급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한전·가스공사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한전과 가스공사는 이번 인상으로 그나마 숨통을 트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로, 추가 요금 인상 요인이 여전하다는 겁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최근에는 에너지 가격이 비교적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은 높은 데 비해 코로나19 등에 따른 경기 침체 등 영향으로 요금 인상 속도는 더뎠습니다. 전력 구입단가가 판매단가보다 높은 ‘역마진’ 구조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인다는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한전은 올해 1분기 발전사들로부터 1kWh당 174원에 전력을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판매 요금은 146.6원이었죠. 즉 올해 1분기에 kWh당 27.4원의 손실을 보면서 전기를 공급했다는 겁니다. 이에 한전은 1분기에만 약 6조20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습니다. 연간 기준으로 2021년에는 5조8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무려 32조 원이 넘는 적자를 봤습니다.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한전의 누적 적자는 44조 원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한전은 이번 전기 요금 인상으로 올해 전력 판매수익이 약 2조66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인상 전 한전의 연간 적자가 9조~10조 원으로 예상됐던 만큼, 올해에도 7조~8조 원의 적자가 기록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요. 영업손실과 비교했을 때 요금 인상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요금 인상을 감행했음에도 적자가 지속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가스공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원가보다 싸게 가스를 공급하면서 적자가 누적된 상황인데요. 가스공사의 1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3조 원대의 도시가스 미수금을 추가로 쌓으면서, 11조6000억 원에 달하는 누적 미수금을 기록했습니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까지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수준으로 인상하고, 가스요금도 MJ당 10.4원 인상해야 한다고 국회에 전달한 바 있습니다.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1분기 13.1원이, 2분기에 8원이 인상되며 30.5원의 공백이 남아 있는데요. 여름철 냉방 수요 급증 등 영향으로 추가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또 이번 인상이 소폭이라고는 하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 5번 연속으로 인상이 이뤄지면서 2021년 말 대비 가정용 전기 요금은 37%, 가스요금은 46% 올라 체감 인상 금액이 큰 상황입니다. 여기에 4분기엔 난방 수요가 급증하고, 내년 1분기엔 총선을 앞뒀다는 점도 추가적 인상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에 요금 인상으로 해결 안 된 적자 누적 문제가 하반기 이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죠.
전기·가스요금을 올리자니 가계 부담이 걱정이고, 그만 올리자니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여전하다는 게 현 상황인데요.
정부는 한전과 가스공사가 요청한 인상 폭의 절반 수준 인상을 결정하면서 취약계층의 부담 완화 방안을 함께 발표했습니다. △요금 인상분 적용 1년 유예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 확대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분 3년 분산 반영 등이 여기에 포함됐죠. 평균보다 에너지를 많이 절약할 경우 제공하는 ‘에너지 캐시백’ 제도도 확대 적용해 20% 이상 전기를 절약하면 kWh당 최대 100원까지 전기요금을 차감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다 큰 규모의 인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원가에 맞는 요금을 책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에너지포커스에 기고한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진다면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전기요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원가주의에 기반해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한전과 가스공사는 회사채 조달, 미수금 회수 등 단기 이슈들이 해소될 것”이라면서도 “악화한 재무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정부는 이번 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취약계층 부담 완화 대책을 함께 내놨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결국 기업 부담으로 다가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특히 전력 소비량이 많은 국내 반도체 기업은 원가 인상 부담에 직면하게 됐는데요. 지난해와 같은 양의 전력을 사용했다고 봐도 삼성전자는 전년 대비 약 1500억 원을, SK하이닉스는 800억 원을 더 부담해야 합니다. 기업의 부담 비용이 커지면 이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결국 물가 상승까지 부르게 되죠.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년 2개월 만에 3%로 내려왔지만, 근원물가 상승률은 아직도 4%대입니다. 또 정부가 7월에도 3분기 전기·가스요금을 올린다면 물가 상방 압력은 더 커질 수 있죠.
현재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는 때 이른 폭염으로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등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 전국의 한낮 기온은 30도를 웃돌면서 곳곳에서 5월 낮 최고 기온을 경신했습니다. 서울은 한낮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강릉, 울진, 속초와 경주 등에서는 33도 이상으로 오르는 등 이른 더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에어컨을 평년보다 빠르게 가동했는데 전기요금까지 올라 부담이 가중된 상황. 경기 침체와 높은 물가 부담까지 짊어진 서민과 기업, 정부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