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푼 마음으로 입주한 새 아파트. ‘새것’이 주는 설렘은 그저 남다른데요. 그 두근거리는 행복을 와장창 무너뜨린 ‘검은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인천 송도신도시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혹파리 떼’가 창궐한 건데요.
입주자들이 이를 발견하고 해충 관련 하자 접수에 나섰지만, 피해 호소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새하얀 ‘새것’에 전혀 어울리지 않고 생각지도 않았던 새까만 ‘혹파리 떼’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등장한 걸까요?
16일 인천 연수구 송도신도시 A 아파트 입주자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의 창문틀과 붙박이장 등에서 지난달 중순 이후 혹파리의 알이나 사체가 발견되기 시작했는데요.
2월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전체 1820세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혹파리 등 해충 관련 하자 접수를 한 세대가 수백 세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죠. 아파트뿐 아니라 같은 단지 내 오피스텔 세대에서도 비슷한 하자 접수 건이 이어지면서 피해는 더 커질 전망입니다.
아파트 건설사는 하자 신청을 받고 전문 방역업체를 통해 차례로 방역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역부족인데요. 심지어 일부 세대에서는 방역 이후에도 혹파리가 보인다며 가구 교체를 요구하고 있죠.
입주자들은 “애들과 살고 있어, 당장 피난을 가야 할 정도다”, “방역을 완료했다는 곳도 계속 출몰하는데 어떻게 살아가겠냐”,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주 발견되는 혹파리는 곰팡이나 버섯을 먹는 균식성으로 붙박이장 등 가구 내부에서 서식하다가 성충이 되면 가구 사이의 틈을 통해 외부로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죠.
특히 혹파리는 나무를 갉아먹으면서 수액을 빨아먹고 자라는데요. 나무, 목재에 큰 치명상을 입히죠. 혹파리 떼가 나타나면 나무는 광합성을 잘할 수 없게 돼 고사하게 됩니다.
문제는 식물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요. 전문가들은 혹파리는 작은 개체이기 때문에 사람이 호흡 시, 혹파리가 호흡기로 들어가 기관지 점막에 달라붙어 비염이나 천식, 폐렴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 작은 유충 껍데기나 성충 사체 등에 오랜 기간 노출되면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의 위험성도 있습니다.. 혹파리가 스트레스를 불러 신경증 등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파트 혹파리 떼 출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인천에서는 2021년 서구 검단신도시 한 아파트 일부 세대에서 혹파리 떼가 출몰했습니다. 이 아파트 또한 입주를 앞두고 이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요. 당시 혹파리 떼는 싱크대 상·하부장, 화장대, 냉장고장, 붙박이장, 신발장 등 아파트 내에 설치된 가구에서 주로 발견됐죠.
당시 시공사는 친환경 자재가 쓰인 가구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자재가 외부 습기에 노출돼 혹파리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는데요. 계속된 민원에 시공사는 두 차례에 걸친 방역과 필요한 가구를 대상으로 붙박이 가구를 교체해줬습니다.
2018년에는 경기 동탄, 화성 등 완공한 지 채 1년도 안 된 새 아파트들에서 혹파리 떼가 나타나기도 했죠. 전문가들은 혹파리 떼가 발생한 원인으로 가구의 ‘파티클 보드’를 언급했는데요. 파티클 보드는 나무 조각이나 톱밥에 접착제를 섞어 고온 고압으로 압착시켜 만든 가공제를 말합니다. 파티클 보드 원료가 오염됐거나 파티클 보드 제조 후 재고 관리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했다고 봤죠. 이 가공제에 곰팡이가 오염됐고, 혹파리 유충이 곰팡이를 먹으면서 계속 서식하게 됐다고 추측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평가가 나오는데요. 국내 혹파리 연구 분야 전문가인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농업연구관은 “국내에선 혹파리 발생이 붙박이장 등 가구와 관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나무 가공 과정에서 유충이 번데기나 성충이 될 때까지 안에 있다가 틈 사이로 빠져나와 불빛이 있는 쪽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아파트 혹파리 떼 출몰 때에 지역 환경단체들이 인천 시청 앞에서 건설사와 서구청에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아파트는 입주자들의 평생 재산인데 건설사 들의 부실시공으로 인해 재산권, 건강권, 정신적 고통이 발생했다고 강조하면서, 향후 검단 신도시 및 인천지역 모든 건설사에 재발 방지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또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건설사들은 철저한 ‘책임시공’을, 허가청은 철저한 검증을 거쳐 준공검사는 물론 ‘책임있는 행정’을 촉구했죠.
하지만 이런 ’혹파리 떼 출몰 사태‘는 또 벌어지고 말았는데요. 현재 인천 송도신도시 A 아파트 건설사 측은 ”입주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역 조치를 하는 상황”이라며 ”방역과 함께 입주자 요청사항을 보면서 가구 교체가 필요한 경우 단계적으로 교체도 진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또한 “방역 후에도 혹파리가 발견된 세대를 대상으로 추가 방역도 실시한다”며 “입주민의 요청이 있으면 내시경 카메라를 이용해 가구 안쪽에 혹파리나 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언제나처럼 또 반복되는 ‘사후 처리’. 그동안 입주자들의 불편과 정신적인 고통은 어떻게 보상해줄 수 있을까요. 이 지긋지긋한 반복이 제발 ‘예방’과 ‘책임’으로 멈추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