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280조원 쏟아붓고도 실패
日, 체면문화 등 사회적가치 주목
양육·주거비 등 경제적 지원 외에
자녀직업 등 사회적 요인 고려를
초저출산은 현실적으로도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 경제가 부담해야 할 노인복지 부담이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출산율 추세와 고령화 속도를 유지한다면 2050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의 40%를 차지하며 경제성장률은 0으로 수렴하고 복지수요 증가로 국가부채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한반도는 젊은이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는 ‘고비용사회’가 돼 악순환이 자명해 보인다.
공통으로 인구소멸 위기를 맞은 우리와 일본이 지난 3월 말 3일 간격을 두고 대대적인 저출산(일본은 ‘소자화’) 대책을 발표했다. 두나라 모두 저출산 문제를 안고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본은 2000년 이래 합계출산율 1.3을 유지해 우리보다는 나은 형편이다.
우리는 2001년 1.31을 기록한 후 지난해 0.78까지 계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KDI 국제정책대학원 최슬기 교수의 조사결과는 2021~2022년 국내 미혼남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수가 2.09명인 것을 보여준다.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초저출산은 우리의 경우 실제 출산 결정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수치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여성의 ‘양육 독박’으로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이 어려워진 것도 원인의 한 가지로 작용하지만 아이의 교육비 등 양육비용과 주거비용이 세계적으로 높은 것도 결혼을 꺼리고 아이를 아예 갖지 않거나 하나만을, 그나마 늦은 나이에 갖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주오대학의 야마다교수는 ‘일본의 저출산대책은 왜 실패했는가?’(2020년)라는 저서를 통해 2010년 이후 무너진 출산율 2.0 대책의 실패 원인을 일본 고유의 가치의식을 무시한 채 서구적 가치를 전제로 한 정책 시행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고유의 가치의식으로서 리스크 회피, 체면 중시, 자녀에 대한 지나친 애착(“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의식을 꼽았다. 체면문화, 자녀에 대한 애착, 리스크에 대한 태도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는-오히려 정도가 큰-우리로서 참고할 만한 지적이라 생각된다.
지난 15년간 280조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쏟아붓고도 실패한 우리의 대책은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서만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녀가 부모 의존적이고 여성이 일에 대해 높은 자기실현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며 결혼 또한 서구의 연애감정보다는 경제적 측면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자녀를 갖는 것은 양육비용이라는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평가되는 자녀의 가치인 학력, 직업순위 등의 사회적 부담을 가져와 출산을 꺼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저출산문제는 이러한 연애, 결혼,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기반해 풀어나가야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아이가 시장가치로 평가되고 결혼 또한 경제적인 측면이 우선시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효과적인 정책은 결혼과 출산이 자신의 경제적인 위치를 저해하지 않는 행위로 인식될 때 가능할 것이다.
아빠 출산휴가의 법적 의무화와 강제(불이행 시 벌칙 포함), 주거비용 절감을 위한 주택 특별분양 확대와 장기저리의 금융 제공, 그리고 영유야 의료비용 면제범위와 한도 및 출산·양육보조금의 체감 수준 인상과 다자녀 누진 지원, 무상교육 등 대책은 아이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계층하락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라는 점에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