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출신‧성별‧지역 안배 설명에도
‘서울대-오십대-男’ 선호 여전
여성 3명‧교수 1명, 그저 위안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달 30일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로 8명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최영애 대법관후보추천위원장은 최종 후보자 명단을 대법원장에게 서면으로 전달하면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법원이 약자 편에 서서 인권 보호에 앞장서온 국가인권위원장을 후보추천위원장으로 모셔온 데는 대법관 인재 구성부터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후보추천위는 대법관 적격 여부를 심사한 결과 윤준(62‧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등법원장, 서경환(57‧연수원 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57‧22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엄상필(54‧23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권영준(52‧25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순영(56‧25기) 서울고법 판사, 신숙희(54‧25기)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고법판사), 정계선(53‧27기)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로 제청대상을 압축했다.
서울고법 소속 법관이 가장 많은데다 최 위원장 고심처럼 이들 후보자를 출신 학교별로 나누면 서울대 법과대학 5명, 고려대 법학과 3명으로 ‘특정 학교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생긴 신조어 ‘서울대-오십대-남성’을 뜻하는 ‘서오남’ 구조는 여전하다.
다만 후보자 면면을 세세히 살피면 추천위원회 고뇌가 읽힌다. 서울 출신 3명, 영남 3명, 호남과 충청 각 1명씩 지역 안배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윤준 고법원장은 지난해 작고한 고(故) 윤관 전 대법원장의 장남이다. 2016년 서울고법 재직 중 탈북 화교 유우성 씨에 대한 보복 기소 사건에서 검찰의 자의적 공소권 남용을 최초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전남 해남군 출생으로 호남 민심을 배려했다.
서경환 부장판사는 올 2월까지 서울회생법원장을 지냈다. 2015년 세월호 사건 2심에서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엄상필 부장판사는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 재판부를 담당해 징역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통상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대법관 후보 1순위로 분류되는 자리여서 7월 퇴임하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후임에 ‘3인방’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손봉기 부장판사는 주로 대구‧울산 지역에서 근무하며 대구지방법원장까지 오른 소위 ‘향(鄕)판’ 시골판사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유일한 대법관 후보자다.
전체 대법관 후보 리스트 37명 가운데 여성은 4명, 교수는 1명에 불과했지만 최종 후보자 명단에 여성 3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박순영 고법판사는 서울고법 노동전담부 경험을 갖춰 노동법 분야 전문성이 있다. 서울행정법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쳐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을 겸직하고 있다.
신숙희 고법판사와 정계선 부장판사는 모두 법원 내 진보적 소모임 회장을 역임했다. 신 고법판사는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여성 법관 최초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임명된 인물이다. 정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고, 우리법연구회에서도 활동했다. 정 부장판사 역시 역대 첫 서울중앙지법 부패전담부 여성 재판장으로서 횡령‧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올해 1월 헌법재판관 후보에도 올랐다.
교수 한 명 또한 제청대상에 뽑혀 학계 인사가 포함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권영준 후보도 제35회 사법시험을 수석 합격한 이후 법관 생활을 하다 2006년부터 서울대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8명 후보자 전원이 판사 출신인 셈이다.
검사 경력이 있는 대법관 후보자 없이 판사들로만 후보자를 추렸는데 2019년 3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물론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전‧현직 판사 14명을 재판에 넘긴 사법 행정권 남용,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 후 불편해진 법원‧검찰 사이 분위기는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의 골만큼 우리사회 ‘서오남’을 깨기 위한 발걸음은 아직 멀게 느껴진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