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로 내어준 건 군산 앞바다의 수라, 계화도, 해창 등 너른 ‘갯벌’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2021년, 우리나라는 유네스코로부터 전남 해안의 갯벌이 보존할 가치가 명백한 세계유산이라는 사실도 인정받았다. “지구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 중 하나”이자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므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했다. 묻게 된다. 그렇다면 이미 상당 부분 없어져 버린 수라, 계화도, 해창 갯벌은 우리에게 이득인가, 손해인가.
21일 개봉하는 황윤 감독의 ‘수라’는 지금이라도 갯벌을 되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다. 절멸 위기에 놓여 있지만,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할 강인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는 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다. 2003년부터 10년간 갯벌을 관찰해 무려 150여 종에 달하는 보호새가 여전히 군산 앞바다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곧장 ‘보호새는 41종’이라던 정부 환경영향평가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근거가 됐다. 방조제에 갇힌 물이 시커멓게 변하고 악취를 풍기자 수질조사도 진행한다. 2020년부터 하루 두 번 갯벌로 바닷물이 드나들게 하는 ‘해수 유통’이 성사된 배경이다.
‘수라’가 각별한 맥락을 지닌 건, 이들을 촬영한 황윤 감독 본인 역시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든 시민’이었다는 점이다. 17년 전인 2006년 그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주민의 격렬한 시위 현장에 있었다. 다시 꺼내든 그의 영상에는 지금은 접하기 쉽지 않은 당시 현장이 ‘사료’처럼 기록돼 있다. 최종 물막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배를 이끌고 군산 앞바다로 모여든 어민들과 이를 제지하는 공권력의 위험천만한 대립, 2006년 당시 ‘새만금사업 계획을 취소해 달라’던 원고 상고를 기각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주문 낭독 모습 등이 선연하다. 끈질기게 기록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시간의 결정체’들이다.
새롭게 촬영한 영상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환경다큐멘터리 뺨치는 고아한 순간들이 담겼다. 거대한 나뭇잎 위에 새하얀 눈발이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의 겨울 갯벌, 내비게이션 없이도 러시아 툰드라에서 동아시아 군산으로, 그곳에서 다시 호주와 뉴질랜드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경이로운 날갯짓, 형언할 수 없는 빛깔로 펄 속에서 팔딱대는 생명체…. 하루 두 번 들어오는 바닷물에 의지해 본연의 상태를 되찾으려는 자연의 강인한 복원 의지는 예상보다 대단하다. 카메라가 아닌 두 눈으로 이 갯벌의 아름다움을 담았던 한 시민은 “은하수 같다”는 표현을 썼다.
수라 갯벌의 미래는 순탄치 않다. 신공항 조성이라는 새로운 위협 때문이다. 군산 미군기지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 시설로도 풀이될 수 있는 신공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국내 미군기지의 중심축을 점차 서쪽 해안가로 옮겨가려는 미군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감독은 지적한다. ‘수라’ 갯벌은 다시 마음껏 숨 쉴 수 있을까. ‘30여 년간 바닷물을 막아뒀던 갯벌이 회복되는 데에는 고작 2년’이라던 조사단의 목소리만이 이 거대한 계획에 작은 균열을 내려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