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로운 듯한 기술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작게는 내 일자리에서부터 사회경제, 문화예술 등의 각 분야, 그리고 인류문명 전반에 걸친 변화 등 그 논의 수준도 상이하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제출한 과제가 꽤 그럴듯함에 놀라거나 아니면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발해낼 수 있느냐와 같은 수준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인류문명사의 급변까지 걱정하는 심각한 논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챗봇을 비롯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변화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그것의 사용은 인간 노동을 도와주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있지만 아예 그 노동을 대체할 수도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각종 투자정보 정리는 물론이고 고도의 투자분석까지 수행함으로써 어떤 이에게는 수익을, 동시에 어떤 이에게는 실직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이 인간만이 가져온 언어와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인류문명에 아주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비관적인 그의 관점은 인공지능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의식이 없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며 편견과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것, 능력은 뛰어나지만, 신경망 형태의 은닉층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며 위임받지 않는 집단이 거대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등의 이유로 이에 대한 철저한 규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대로 핵이 핵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인공지능은 또 다른 인공지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고 여전히 불안함이 존재하지만, 그 위험한 핵도 인간의 통제하에 있는 것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경제학자 로버트 포겔의 철도연구와 과거의 기술혁신사례 등을 인용하며 이 대화형 인공지능의 등장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기술이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킨 예는 없다는 것이다. 자동화가 미국의 실업률을 치솟게 할 것이라는 2000년대 초 예측은 틀렸고 자동화율이 높은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의 실업률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도 언급됐다. 독점의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의 검색시장처럼 몇몇 빅테크기업들의 과점적 경쟁이 나타날 것인데 이는 모두 유사한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공급자를 얼마든지 갈아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을까. 물론 급변하는 기술의 발전과 이에 맞물려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회경제가 보여줄 미래를 섣불리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변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은 시스템의 위험 정도에 따른 규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인공지능 규제법을 마련하고 있고 미국도 안전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인공지능 개발을 중단하자는 일각의 주장에는 반대하면서도 인공지능의 역량발전과 안전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며, 시스템 관리와 이익 및 접근성 공유방법에 대한 전 세계적 논의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인공지능산업 활성화를 위한 산업적 관점뿐만 아니라 이제 이것을 어떻게 인간에게 이롭게 이용할 것인가에 관한 사회적 관점과 논의에 입각해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에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