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삼성전자 기밀을 빼돌려 ‘복제 공장’을 지으려던 전직 삼성전자 임원이 구속됐다. 수원지검은 그제 전직 임원 최모 씨 등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전직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직원 6명도 함께 적발됐다.
이번 사건은 단편적 기술 유출을 노리는 여느 불법 탈취극과는 체급이 다르다. 글로벌 경쟁력을 자랑하는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베끼는 전복적 규모의 복제 시도였다. 해외 기술탈취가 그 얼마나 심각한 단계에 도달해 있는지 적나라하게 읽힌다. 각성이 요구된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은 옛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 씨 등은 삼성전자 영업비밀인 BED(클린룸 조성조건), 설계도면, 공정배치도 등을 빼내 중국 시안(西安)에 복제 공장을 신설하려 했다. 부지는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1.5k㎞ 떨어진 곳이었다고 한다. 같은 지역에 ‘가성비’에서 상대조차 될 수 없는 쌍둥이 공장이 들어설 뻔했다. 삼성 공장이 경쟁력을 잃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계획은 대만 회사의 8조 원대 투자 약정이 불발에 그치면서 무산됐다고 한다.
최 씨 등의 불법 기획이 흔적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술탈취극은 완성된 것이나 진배없다. 최 씨 일당은 중국 청두시에서 4600억 원대 투자를 받아 지난해 반도체 연구개발(R&D)동을 완공했고 삼성 기술을 적용한 시제품도 생산했다. 현지 언론은 “반도체 굴기” 운운했다.
본지는 기술 도난에 관한 범사회적 각성과 방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지난주(6월 9일)에도 ‘사법부가 달라져야 기술유출 피해 줄일 수 있다’는 사설로 솜방망이 판결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온정적 판결을 일삼는 일선 법원과 재판부는 관련 범죄를 외려 부추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번에 덜미를 잡힌 최 씨 일당도 그간 사법부가 엄히 임해 예방적 효과를 냈다면 다른 의사결정을 했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기술유출 관련 양형기준이 강화된다는 소식이 어제 대법원에서 나왔다. 수원지검이 사건 전모를 밝힌 같은 날 회의를 연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24년 4월까지 양형 기준을 수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양형위는 “기술유출 양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사법부가 양형 강화 쪽으로 큰 가닥을 잡았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속도와 강도 조절이다. 우선, 하루라도 일찍 엄격한 법 집행이 가능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 조정시점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나아가, 양형 기준을 찔끔 손보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심할 일이다.
미국, 대만 등은 첨단기술 탈취 범죄를 때론 간첩죄로 다스린다. 중형 처벌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국가안보, 경제안보와 직결되니 그러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본 법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결국, 국회가 나설 입법 사안이지만 양형위와 각급 법원만 태도를 바꿔도 국익을 좀먹는 범죄는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거듭 각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