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놈이랑 붙자”…‘사이렌: 불의 섬’이 여성성을 깨부순 방식 [이슈크래커]

입력 2023-06-14 17:02수정 2023-06-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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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사진제공=넷플릭스)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센 놈이랑 붙자, 그게 멋있지!”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사이렌: 불의 섬’(이하 ‘사이렌’)에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이렌’은 최강의 전투력과 치밀한 전략을 모두 갖춘 여성 24인이 4명씩 6개의 직업군별로 팀을 이뤄 미지의 섬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생존 전투 서바이벌 예능입니다. 경찰, 군인, 소방관, 운동선수, 스턴트 배우, 경호원 등 몸 쓰는 일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불꽃 튀기는 경쟁을 펼치죠.

앞서 넷플릭스 글로벌 1위에 오른 ‘피지컬: 100’에 이어 공개된 넷플릭스의 또 다른 버전인 ‘피지컬 서바이벌’인데요. ‘피지컬: 100’은 가장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최고의 ‘몸’을 찾기 위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등 여러 분야의 강자 100명이 출연해 화제를 빚은 바 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이렌’에는 대중에 알려진 유명인이 전무해 초반 화제성은 비교적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별점은 분명했죠. 모든 참가자가 여성이라는 것, 또 이들이 6개의 직업군으로 팀을 이뤄 생존 전투 서바이벌을 벌인다는 점인데요. 참가자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경쟁을 이어나갈지, 또 직업군마다 어떤 전략을 보여줄지 기대를 불러 모았고 결국 입소문을 타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사이렌’은 1일 국내 넷플릭스 톱 10 시리즈 7위로 진입해 2일엔 6위, 3일과 4일엔 5위를 기록하더니 7일과 8일엔 2위를 차지하는 등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후반부 5회차가 공개된 6일로부터 일주일이 훌쩍 지났지만, 시청자들은 아직도 SNS를 통해 호평을 남기고 있고, 유형 테스트, 팬 아트 등을 만들면서 다양한 형태로 감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팀별로 팬덤도 형성된 상황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사진제공=넷플릭스)
6개 직업군 특성 두드러져…명예 걸고 붙는다

‘사이렌’은 부제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악바리는 자신 있거든요’, ‘상관없어, 승리만 할 수 있으면’, ‘센 놈이랑 붙자, 그게 멋있지’, ‘몸 하나 믿고 한번 가보자’ 등 부제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각 에피소드에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특색이 담깁니다.

경찰, 군인, 소방관, 운동선수, 스턴트 배우, 경호원으로 나뉜 ‘사이렌’의 6개 팀은 60㎏짜리 깃발을 든 채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지나고, 도끼로 장작을 패서 불을 피우고, 땅을 파고, 몸싸움을 벌여 기지를 빼앗거나 지킵니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보이는 각 팀의 특성과 전략이 상이하다는 겁니다.

가령 불 피우기 미션이 주어지자, 소방팀은 “(불을) 꺼보기만 해서 피우는 건 어렵다”고 토로하며 “불 피우는 게 이렇게 힘든데, 무슨 화재가 그렇게 많이 나냐”는 농담을 던졌는데요. 이는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화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의 역량을 체감케 하는 대목입니다.

또 창문을 부수고 진입한 군인팀에 맞서다 결국 깃발을 빼앗긴 경찰팀은 “사건 (출동)할 때 영장 있어도 안에서 막는 걸 보면 왜 그럴까 싶었는데, 이제 알겠다”고 자조합니다. 운동팀은 바닥에 떨어질 때 무의식적으로 목을 올려 머리를 보호하고, 경호팀은 군인팀을 “보호해주고 싶다”고 연합의 손길을 내미는가 하면 군인팀의 기지가 점령당하자 미안해하면서 경호원의 ‘직업병’을 보여주죠.

미션 수행을 위한 전략에서 각 팀의 개성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효율적인 동선을 추구하는 소방팀, 계속 작전을 짜고 매복하는 군인팀, 가장 먼저 정찰에 나선 경찰팀 등은 각기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근무 환경에서 습득한 요소를 서바이벌에 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찰팀은 상대 팀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기억해뒀다가 이를 근거로 각 팀의 기지 위치를 파악합니다. 이미 점령당한 기지들을 살펴보면서 끝난 승부를 복기하는 모습에서는 현장과 주변을 탐색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의 특성이 엿보이죠.

군인팀은 ‘사이렌’ 내 일종의 ‘빌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승리를 위한 욕망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로 작용하는데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연합팀의 도움 요청을 무시하거나 규칙 일부를 어겨 핸디캡을 받는 등,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타 팀을 응원하는 시청자와 군인팀을 응원하는 시청자 모두 열띤 반응을 보였는데요. 군인팀에 대해서는 ‘까’(안티)와 ‘빠’(팬) 모두를 잡으며 ‘미친 스타성’을 보여줬다는 평도 나옵니다.

특히 소방팀과 군인팀의 대치는 높은 긴장감을 자아냈습니다. 군인팀이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질색하는 소방팀, 팀원만 있는 자리에서도 작은 목소리로 비밀리에 작전을 짜는 군인팀과 시원하게 문을 열어놓은 채 회의를 진행하는 소방팀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데요. 이 같은 모습에서는 각 직업군에서 추구하는 가치, 목표와 전문성까지 체감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사이렌 불의 섬’. (사진제공=넷플릭스)
생존 서바이벌, 남성만의 전유물?…고정관념·편견 깼다

시리즈를 연출한 이은경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본 분들에게 ‘여자치고 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이분들은 여경, 여군이 아니라 경찰과 군인을 대표해서 나왔기에 여성을 앞에 붙이는 게 조심스럽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실로 ‘사이렌’은 기존 숱한 매체에서 그려온 ‘여성’을 답습하지 않습니다. 신체 부위를 훑어 올리면서 섹슈얼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카메라 연출이나 ‘기 싸움’ 따위에 집착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죠. 대신 힘, 경쟁, 의리, 팀워크 등 남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요소들을 전적으로 그려냅니다. 웃통을 벗어젖힌 채 장작을 패거나 도끼로 문을 부숴버리고, 맨손으로 마구 땅을 파는 등 강력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호들갑 없이, 담백하게 담아내면서요.

‘사이렌’은 성적 고정관념이 만연한 사회를 회상케도 합니다. 해양경찰청 형사기동대 출신 이슬은 “남경들에겐 ‘형사님, 형사님’ 하는데 저한테는 ‘아가씨’라고 한다”며 “아가씨가 아니라 형사”라고 힘줘 말했는데요. 경찰, 군인, 소방관 등 남성 중심 집단과 사회에서 여자는 단순히 ‘여성’으로 타자화되는 경향이 짙습니다. 성취도, 실수도 모두 ‘여성’과 연결되죠. ‘여자라서 꼼꼼하다’, ‘여자라서 겁이 많다’ 등의 방식입니다. 직업의 기본형이 남성인 경우도 허다합니다. 여경, 여교사 등 특정 직업에 ‘여’ 자를 붙이는 관행은 일상에서도 자주 목격되는데요. 개인의 실수도 ‘여성’으로 환원되는 실정인 겁니다.

‘사이렌’은 이 같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모든 출연진은 직업군의 명예를 걸고, 사명감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경쟁에 임하며 체력 등 본인의 한계까지 뛰어넘죠.

남성의 것으로 치부됐던 영역에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강인한 체력과 끈끈한 팀워크로 매 순간을 헤쳐 나가면서 숱한 콘텐츠가 그리던 ‘여성’의 이미지를 전복한 겁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시즌2 나오나…‘사이렌’ 속 마지막 지령은 ‘출발’

10부작인 ‘사이렌’은 모든 회차가 공개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시청자들은 시즌2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직업군별로 팀을 이뤄 경쟁하는 만큼 시즌제로 이어 나가기도 좋은 포맷이기도 하죠. 유사한 예능을 꼽아보자면 ‘강철부대’ 시리즈가 있습니다. ‘강철부대’는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팀을 이뤄 부대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루는 서바이벌인데요. 매 시즌에는 가장 먼저 탈락해 복수의 칼을 갈거나, 또 한 번의 우승을 목표로 하는 부대원들이 등장합니다. ‘사이렌’에는 연합팀이 존재하는 만큼, 더 다양한 서사를 보여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또 새로운 시즌을 암시하는 듯한 장치도 시청자들의 기대를 키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친 소방팀이 2위로 대결을 마무리하고 섬에서 나가자, 우승을 차지한 운동팀에게는 마스터의 지령이 도착합니다. 봉투 속 종이에는 ‘출발’이라는 두 글자만 적혀 있어 의문을 자아냈죠.

운동팀 역시 “어딜 출발하냐”, “출발? 또?”, “무서워” 등의 반응을 보이며 혼란스러워했는데요. 이들은 곧 웃으며 어디론가 달려 나갑니다. 이 장면을 끝으로 ‘사이렌’은 막을 내렸죠. 마치 다음 시즌이 이어질 법한 장면에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시즌제를 간곡히 바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PD는 제작발표회에서 “다음 시즌을 하게 된다면 계속 ‘불의 섬’에서 촬영을 하게 되냐“는 질문에 “예리한 질문”이라며 “시즌2 얘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자연 현상이 다양하게 많으니까 바람의 섬 기타 등등으로 가면 어떨까 싶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채진아 작가는 ‘사이렌’의 전편 공개를 앞둔 6일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마음으로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물의 섬, 바람의 섬, 흙의 섬 등으로 하면 어떨까 싶다”며 “마음으로만 준비하고 있다. 도와 달라”고 웃음을 보였습니다.

한편, ‘사이렌’의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를 모으는 동시에 계속해서 나아갈 이들의 모습을 연상케도 합니다. 현실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여성들의 전진은 끊임없이 이어질 거라는 거죠.

호평 속에 막을 내린 ‘사이렌’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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