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떼입찰' 칼 빼 든 정부…우미·대방 등 중견사는 '울상' [떨고 있는 중견 건설사②]

입력 2023-06-19 17:30수정 2023-06-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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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감시국장이 지난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업집단 호반건설의 부당내부거래 제재와 관련해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가 중견 건설사 ‘벌떼입찰’ 건을 정조준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성장한 건설사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호반그룹에 608억 원 규모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가세해 강력 제재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우미건설과 대방건설, 중흥건설 등의 건설사에 대한 추가 조치도 예고했다. 정부 살생부에 오른 기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택지 입찰 기준이 바뀌면 주택 사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19일 공정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2013년 말부터 2015년까지 계열사를 동원한 벌떼입찰로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뒤 총수 자녀 소유의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 등 2세 회사를 부당 지원하고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 공정위는 이를 문제 삼아 15일 ‘부당 내부거래’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이번 과징금 부과 때 우미·대방·중흥·제일건설 등 또 다른 벌떼입찰 혐의를 받는 기업도 곧 조치할 것임을 예고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아직 (해당 기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국토부로부터 조치해달라는 의견을 받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지난해 국토부가 공공택지 추첨·공급 101개 기업(133필지)을 조사한 결과 총 81개 사(111필지)에서 페이퍼컴퍼니 동원 정황을 발견했다. 연도별 벌떼입찰 의심 기업 낙찰 사례는 2018년 이전 3건에서 2019년 45건, 2020년 42건으로 폭증했다. 2021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18건과 3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전 정부 당시 호반건설과 함께 우미·대방·중흥·제일건설은 공공택지 낙찰 비중이 다른 건설사보다 높았다는 발표도 나왔다. 지난해 8월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5년간 해당 건설사들은 총 178필지 중 67필지(37%)를 낙찰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반이 18필지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우미(17필지), 대방(14필지), 중흥(11필지), 제일(7필지) 순이었다.

이렇듯 벌떼 입찰 정황이 포착되자 공정위뿐 아니라 국토부도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원 장관은 16일 “호반건설뿐 아니라 그동안 적발된 수십 개의 벌떼입찰 건설사가 현재 경찰·검찰 수사와 공정위조사 등을 받고 있다”며“제도적 보완을 통해 벌떼입찰을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했다. 공정위와 별도로 벌떼입찰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처벌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건설사들은 벌떼 입찰의 불법성 판단과 관련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택지입찰 기준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 조사 대상 건설사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고, 이달 초에도 자료를 싹 한 번 가져갔다”며 “조사 중인 사안인 만큼 말을 아낄 수밖에 없지만,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과거에는 (벌떼 입찰을) 안 막고 지금에야 기준이 바뀌었다면서 기업을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사 대상 업체 관계자는 “당시 기준에 맞춰 합법적으로 진행했고, 페이퍼컴퍼니 동원도 의혹과 달리 (입찰에 참여한 법인은) 다 정상 법인이었다”며 “특히 공정위는 벌떼입찰을 기업 승계에 사용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는 다른 회사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번 벌떼입찰 사태를 계기로 중견 건설사의 영업 환경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공공택지 분양이 안 됐을 때는 LH에서 찾아와 택지분양 홍보를 하던 시기가 있었고, 이때 중견사들이 대거 낙찰받은 경우도 많은 데 지금 이들 기업을 때리는 건 말이 안 맞다”며 “정부의 ‘1사1필지’ 제도 시행에 이번 벌떼입찰 제재까지 이어지면 주택 사업이 전부인 중견사 경영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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