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이래 첫 공모 회사채 발행을 추진해오던 에코프로가 암초를 만났다. 공모채 발행을 위해서는 신용평가사 최소 2개사 이상으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한 곳에서 BBB+ 등급을 받으면서다. 업계에서는 에코프로가 A등급으로 공모채 발행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는 이날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이 예정돼 있었으나, 잠정 연기를 결정했다. 전날 에코프로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BBB+, 긍정적’ 기업 신용등급을 받았다. 한국신용평가는 “계열사별 생산능력 확충을 위한 설비 신·증설 투자부담이 지속되면서, 중단기적으로 영업 현금흐름을 웃도는 자금 소요와 계열사 전반의 추가 차입금 증가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했다.
에코프로는 앞서 한국기업평가로부터 ‘A-, 안정적’ 신용등급을 부여받은 바 있다. 주요 사업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에코프로이노베이션 등이 영위하는 이차전지 사업 간의 수직계열화와 전략적 통합도가 높은 점이 반영돼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3월 에코프로의 주력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에 대해 ‘A-, 긍정적’으로 신용등급과 전망을 동시에 상향 조정했다.
문제는 한국신용평가(BBB+)와 한국기업평가(A-) 간 등급 스플릿(불일치)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통상 신용평가업계에서는 등급 스플릿이 발생할 경우 가장 최근에 평가한 2개의 등급 중 낮은 등급이 먼저 적용된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기준금리는 불일치가 발생한 두 가지 등급을 모두 고려해 주관사와 금리 설정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통용되는 유효 등급은 최근 공시된 2개 등급 중 낮은 등급이 우선 평가된다. 에코프로로서는 A등급으로 평가받기 어려워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코프로로서는 두 가지 선택지에 놓인다. 등급 스플릿 상태로 공모채 발행을 진행하거나, 또 다른 신용 3사인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A- 등급을 받아서 A등급으로 공모채 발행을 진행하는 경우다. 다만 후자의 경우 에코프로로서는 기업 신용평가 수수료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통상 기업들이 신용평가를 진행하는 데는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수수료가 든다. 등급 스플릿 상태로 발행을 진행한다고 해도 금리밴드 레벨이 높게 형성될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에코프로가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다시 신용평가를 받더라도 A등급을 받을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에코프로의 주요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의 등급 공시를 통해 봤을 때 에코프로가 A-를 못 받는다”며 “이미 주요 자회사 등급인 에코프로비엠 간 스플릿이 발생했기 때문에 어려울 것으로 본다. 에코프로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등급 스플릿이 발생해서, 수요예측과 기관투자자들의 계획을 다시 짜야하는 곤란한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에코프로는 현재로써도 나머지 한 곳에서도 BBB+가 나오면 B등급대로 공모 회사채 발행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편 이번 공모채 발행은 에코프로로서는 처음이다. 지주회사인 에코프로는 그동안 에코프로비엠의 공모 회사채 또는 사모사채를 위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현재 에코프로는 사모시장에서 2021년 발행된 150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CB는 2026년 7월에 만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