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 장사로 먹고 살아서?”…지역축제 바가지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이슈크래커]

입력 2023-06-20 16:10수정 2023-06-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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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환경사랑축제’ 내 한 노점에서 판매한 바비큐와 소주. (출처=블로그 ‘정직한 청년’)
지역 축제 곳곳에서 먹거리 관련 ‘바가지요금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춘천 막국수축제 음식 가격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과 2장의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의 작성자는 해당 축제에 방문해 닭갈비 2인분과 감자전 3장을 먹었다고 합니다. 1인분 가격이 1만4000원이라는 닭갈비는 2인분임에도 시중에서 파는 1인분 양에 불과해보였습니다. 감자전은 지름 10㎝ 크기 밖에 안됐는데요. 가격은 무려 2만5000원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작성자는 “이 정도면 축제가 아니라 어디 한탕 해 먹으려는 범죄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앞서 이달 14일에도‘주말에 열렸던 수원 축제 후기’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는데요. 작성자 A 씨는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경기도 수원 화성행궁에서 열린 ‘2023 환경사랑축제’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A 씨는 “얼마 전 지역 축제 바가지라는 뉴스를 접했는데 실제로 당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습니다. 글에 따르면 A 씨는 한 노상 음식점에서 4만 원짜리 통돼지 바비큐와 소주 등을 주문했습니다. A 씨가 공개한 사진 속 바비큐는 돼지고기와 소량의 양파, 고추, 쌈장 등으로 구성된 모습입니다.

A 씨는 “바비큐를 시켰는데 수육스러운 바비큐가 나왔다. 사이드에 구운 왕소금과 쌈장, 채 썬 고추와 양파. 다른 반찬 없이 김치 반찬 하나에 돼지 바비큐로 4만 원의 기적”이라고 꼬집었는데요. 고기 밑에는 양배추가 깔려, 실제로는 양도 적었다고 부연했습니다.

또 이 노점은 소주를 주문한 A 씨에게 페트병에 소주를 담아 내줬다고 합니다. A 씨는 “고등학생들 몰래 소주를 주는 것처럼 왜 생수병에 담아준 건지”라며 황당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화성 축제는 수원 음식 업체가 아닌 전국을 돌아다니는 전문 노점상들과 주최 측 축제가 돼버린 폐해”라고 지적했죠.

이처럼 최근 지역 축제를 비롯해 전통시장 등에서는 먹거리 관련 바가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한국의 바가지요금을 조심하라는 후기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죠. 각 지자체는 ‘바가지 논란’이 불거질 때 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있지만,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KBS2 ‘1박 2일 시즌4’)
‘1박 2일’이 쏘아 올린 바가지 논란…지자체 일제히 점검 나서기도

‘타지니까’, ‘상인들이 대거 나서는 축제니까’ 등 갖가지 이유로 흘려버리곤 했던 바가지요금 논란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했습니다.

최근 KBS2 ‘1박 2일’에서는 출연진이 경북 영양군의 한 재래시장에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는데요. 이들은 옛날과자 일부를 시식한 뒤 생강과자, 땅콩과자, 젤리 등을 각각 봉투에 담았습니다. 김종민이 “우리 너무 많이 샀나”라고 말하자, 해당 노점의 상인은 “얼마 안 나오는데 뭘”이라면서 봉투를 저울에 옮겨 무게를 달았죠.

저울에 표기된 과자 한 봉지(1.5㎏) 가격은 6만8569원이었습니다. 단가는 100g당 4499원으로 책정됐죠. 상인이 “7만 원”을 부르자 출연진은 깜짝 놀라며 “너무 비싼데” 등 반응을 보였습니다. 출연자가 “10만 원에 맞춰달라”고 하자 상인은 손을 휘저었고, 이들은 결국 옛날과자 3봉지를 구매하는 데 14만 원을 냈습니다.

방송 후 이 장면은 온라인상에 확산하면서 논란을 빚었습니다. 영양군 홈페이지에도 거센 항의가 쏟아졌죠. 상인이 저울에 책정된 가격(6만8569원)보다 값을 높여 불렀다는 점, 방송 촬영 중임을 인지했는데도 과하게 비싼 값을 받은 사실에도 비판이 제기됐는데요. 논란이 확산하자 군은 입장을 내고 사과하면서도 “1박 2일에 나온 상인은 제18회 영양산나물축제(5.11~14. 3박 4일) 기간에 옛날과자류 판매를 위해 이동해온 외부 상인”이라며 “피해는 온전히 영양전통시장 상인이 입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군은 또 한 번 사과문을 올리고 “이번 일을 마치 외부 상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언급한 것에 대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며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이동 상인뿐만 아니라 전통시장과 식당 등 업소 전반에 대해 재점검하고 국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영양군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죠.

과자를 판매한 상인도 군청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그는 “변명하지 않겠다”면서 “코로나로 먹고 살기 힘들어 과자 단가를 높이 책정했다. 모든 상인과 제작진에게 죄송하다”고 밝혔습니다.

바가지요금에 대한 비판이 매섭게 일자, 축제가 계획돼 있던 지자체들도 점검에 나섰습니다. 상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음식 가격을 잡으려고 한 건데요. 강릉단오제위원회는 축제 대표 음식인 감자전(2장 1만2000원), 단오 막걸리(1병 6000원) 등의 가격을 정했습니다. 또 어묵, 꼬치 등을 파는 상가에선 가격을 공시하도록 해 바가지요금 논란을 막으려 했죠. 강원 속초시는 ‘2023 실향민 문화축제’ 먹거리장터에서 판매할 수 있는 업체를 지역 업체로 제한했습니다.

▲JTBC ‘뉴스룸 뒤’에 출연한 김선태 충주시 주무관. (출처=JTBC ‘뉴스룸 뒤’/유튜브 채널 ‘JTBC News’)
충주시 주무관 “바가지 논란, 주원인은 상인 욕심…관공서·지자체 관리 부실도 사실”

바가지요금 논란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온라인상에서는 공론화되지 않은 바가지 사례가 숱하게 발견되죠. 이에 ‘상인을 엄밀히 단속하면 되는 것 아니냐’ 등 지자체의 미미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 충주시청 홍보담당관 김선태 주무관이 15일 JTBC ‘뉴스룸 뒤’에 출연해 바가지요금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김 주무관은 바가지요금의 원인으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상인의 욕심”이라면서도 “관공서나 지자체의 관리 부실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는데요. 이어 “관리 부실이라고는 하지만,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형 축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보통 한 명”이라며 “이 한 명이 섭외부터 장소, 천막 대여 등 축제 전체를 혼자 운영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주최는 지자체에서 하더라도 주관은 따로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주무관은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주관사를 통해 운영하게 된다. 그래서 (축제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안되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아무래도 혼자 담당하다 보니까”라며 “바가지 이슈의 근본적인 원인은 폭리를 취하려는 상인분들의 마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노점에서 판매하는 먹거리 가격은 상인들이 자율적으로 정합니다. 현행법상 숙박업이나 음식업의 경우 자율 가격제를 적용해, 행사를 주관하는 지자체더라도 가격 책정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관광객이 늘어나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등 종합적인 문제가 맞물려 바가지 논란이 심화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논란은 상인과 노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행사 전반, 또 지자체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습니다. 한 번 행사를 방문한 관광객이 행사를 찾지 않는 이유가 된다는 겁니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현장. (출처=무주산골영화제 인스타그램)
자정 노력도 체감돼…‘한철 장사’ 인식 바꿀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바가지요금 문제를 근절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곤 하지만, 자정 노력이 체감되는 지역 축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북 무주군은 이달 2일부터 6일까지 5일간 열린 ‘무주 산골 영화제’에서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음식 단가를 1만 원 이하로 책정했습니다. 지름 26㎝짜리 접시에 담긴 삼겹살과 숙주나물은 1만 원, 20㎝ 길이 수제 소시지에 야채와 빵을 곁들인 세트는 3000원 등에 판매됐죠.

간식 부스 운영권 선발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행사 개최에 앞서 지역 음식점을 대상으로 간식 부스 운영권에 대한 공모를 진행, 음식 가격과 20~30대를 대상으로 하는 메뉴를 개발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한 업체 7곳을 최종 선발했는데요. 음료와 주류 가격을 참여 업체 전체가 통일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도 제시했습니다.

또 이번 축제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자 다회용기도 사용했습니다. 지난해 축제에선 하루 10t가량 나오던 쓰레기가 올해엔 하루 5t으로 절반이 줄어들었죠. 행사에 방문한 시민들도 SNS 등지에 방문 후기를 남기며 “모범 사례”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축제 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상인들이 지역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선 지자체로부터 메뉴와 가격, 위생 등을 사전 점검받고 관련 교육까지 이수해야 하는데요. 교육을 받은 후에도 관할 보건소 직원 앞에서 장사 과정을 시연하는 등 비교적 엄격한 절차에 따라 판매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에 국내에서도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행사 기획에 참여하고 현장을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죠.

관광지의 고물가에 “그 돈이면 해외를 간다”는 말이 빈번하게 나오는 상황. 특히 여름 휴가철을 앞둔 만큼, 국내 여행지를 들여다보는 시민과 외국인도 다수일 것으로 보이는데요. 상인의 ‘한철 장사’ 인식에 변화를 부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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