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바그너에 박수치던 시민들, 러 경찰 복귀에는 비난
푸틴 시선 내란에 빼앗겨 우크라에 이익 분석
내년 러시아 대선 전 추가 내란 가능성도
러시아 내란이 24일(현지시간) 예상과 달리 하루 만에 일단락됐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성엔 많은 흠집을 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내년 대선을 앞둔 러시아의 운명과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이 이번 일로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안팎에선 이번 일을 두고 여러 가설이 제기된다. 바그너(영문명 와그너)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등 외부 지원을 받아 러시아로 들어갔다는 설과 푸틴 체제에 불만을 가진 러시아 내 조직 일부가 은밀히 협력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세르게이 수믈레니 유러피언레질리언스이니셔티브센터(ERIC) 소장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바그너가 러시아 남서부를 쉽게 접수한 것으로 볼 때 지금까지 푸틴 체제를 지탱해 온 치안이나 군 당국 관계자 일부가 가담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프리고진 단독 소행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과거 본지와 인터뷰했던 우크라이나 국제정치 전문가인 제이슨 제이 스마트 정치학 박사는 트위터에 “갈등의 본질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바그너의 예산을 노렸다는 것”이라며 “프리고진은 이 사실을 푸틴 대통령에게 호소할 계획이었지만,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가뜩이나 지원 부족에 애를 먹는 프리고진을 폭발하게 했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지원 부족을 문제로 푸틴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전날 모스크바 북진에 앞서선 “모스크바 군 수뇌부를 모두 축출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원인이 어찌 됐든 이번 내란으로 푸틴 정권이 크게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이제 시선은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과 러시아 운명으로 향한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이번 일로 푸틴 대통령의 시선이 전선에서 국내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며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군에 플러스”라고 평했다.
나아가 “장기적인 전망은 알 수 없지만, 국내외 막론하고 푸틴 대통령의 권위가 크게 훼손된 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 녹화방송이었으며 이미 도망갔다는 식의 조롱이 확산해 푸틴 대통령의 추락한 지위를 가늠케 했다.
이날 바그너가 떠난 로스토프나노두에선 피신했던 러시아 경찰들이 치안 유지를 위해 돌아오자 시민들이 저항하는 일도 있었다. 자신들을 내버려 둔 채 줄행랑친 공권력에 반기를 든 것이다. 떠나는 프리고진에게 손뼉 치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일련의 이유로 내년 봄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추가 내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내란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때도 프리고진과 푸틴의 충돌이 될 수 있다. 푸틴 정부가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입건을 취하하고 바그너 용병들에 대한 기소도 철회했지만, 전문가들은 분명 숨은 의도가 있으며 이로 인해 추가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CNN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질 도허티는 “푸틴 대통령은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며 “프리고진이 어딘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한 위협이 될 것이고 이건 푸틴 대통령에겐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스마트 박사 역시 “푸틴 대통령은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을 봐주지 않는다”며 “프리고진을 지원한 러시아 내 공무원이나 군인은 직위에서 해제될 것이고 일부는 보복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의 러시아를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비유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쟁 말기인 1944년 7월 독일에선 반히틀러파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 미수 사건이 있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도 잘 알려진 이 사건은 당시 수많은 쿠데타 세력의 축출로 마무리됐지만,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독일은 패전했고 전쟁도 끝났다.
이번 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로브 리 선임 연구원은 “격전지 바흐무트 전투 이후 5월 말이나 6월 초 바그너 병력이 철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바그너는 방어보다 공격을 위해 기획됐고 이번 일이 전쟁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