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시행 앞두고 홍보 사활
증권사 점유율 19%→22% '껑충'
은행 "안전·수익 두 토끼 잡을 것"
보험사, 수익률 개선 저조해 고민
퇴직연금은 매년 30조 원씩 성장하고 있는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다. 빼앗길 수 없는 수익원이자 미래 먹거리인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 있는 ‘사전지정운용 제도(디폴트옵션)’가 12일 시행된다. 압도적 점유율로 시장을 이끌었던 은행권과 보험사, 수익률이 강점인 증권사 등은 초긴장 상태다. 퇴직연금 운용 방향성이 안정성 추구에서 적극적인 수익률 제고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활발한 ‘머니무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닥공(닥치고 공격)’ 증권사와 ‘철통 방어’를 해야 하는 은행과 보험사들은 ‘같은 듯 다른’ 전략을 세우며 사활을 걸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확정급여형(DB) 2.37%, 확정기여형(DC) 2.45%, 개인형(IRP) 2.24%로 집계됐다.
증권사는 은행보다 높은 2%대 후반의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 상위 5개 증권사(미래에셋·KB·NH투자·삼성·한국투자)의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DB형 2.78%, DC형 2.90%, IRP 2.84%다. 5대 시중은행 수익률보다 최대 0.6%포인트(p) 높다.
은행권이 퇴직연금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근로자 대부분이 회사 주거래은행에 퇴직연금을 가입한 뒤 묵혀 두는 경향이 강해서였다.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이 높다 보니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디폴트옵션이 시행되면 높은 수익률을 내는 증권사에 퇴직연금이 몰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증권사의 시장 점유율은 가파르게 오르는 추세다. 1분기 기준 증권사의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은 22.7%다. 2018년 19.4%에 이어 2019년 19.8%, 2020년 20.2%, 2021년 21.3%, 2022년 22.3%로 집계됐다.
현재 증권사와 보험사(25.6%)의 점유율 차이는 3%p밖에 나지 않는다. 보험업권은 유일하게 지난해 4분기보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소폭 감소(0.55%)했다. 은행권의 올해 1분기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4분기보다 2.39% 증가했다.
은행권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등 수익률과 서비스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 전용 상담센터를 확충하고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도입했다. 은행의 강점인 안정성과 수익률을 동시에 잡아 증권·보험사와의 격차를 벌린다는 게 목표다.
증권업계는 다른 업권보다 실적배당형 상품 운용에서 전문성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은행, 보험사의 퇴직연금 상품은 예금·펀드 등 안전자산으로 투자가 제한되지만, 증권사는 연계파생결합사채(ELB)·상장지수펀드(ETF)·주식형 펀드·채권·리츠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보험업계는 고객 이탈 방지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보험권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타 업권에 비해 힘을 쓰지 못하면서 디폴트옵션으로 인한 적립금 이탈 우려가 커졌다. 실제 올해 1분기 퇴직연금 시장에서 보험업계만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증권업계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늘어난 반면, 보험업계는 감소했다. 수익률도 은행과 증권에 비해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보험업계의 퇴직연금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한 경쟁력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보험업권의 성적이 가장 저조했다. 올해 1분기 보험사의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DB·DC·IRP형 평균, 원리금보장 기준)은 2.28%로, 지난해 4분기(1.91%)에 비해 약 0.37%p 상승에 불과했다. 이 기간 은행의 수익률은 1.66%에서 2.25%로 0.59%p 올랐으며, 증권사는 2.08%에서 2.86%로 0.78%p 상승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금리 인상에 따른 시장 변화를 타 업권에 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수익률이 하락했다”며 “디폴트옵션 시행으로 인한 영향은 수익률 제고 전략 등 금융사별 대처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