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이종격투기 대결이 ‘농담이 아닐 수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NYT에 따르면 종합격투기 단체 UFC의 데이나 화이트 회장의 주선으로 두 사람 간 실전 대결을 성사시키기 위한 물밑 조율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화이트 회장은 “저커버그가 문자로 ‘머스크가 싸움에 대해 진심인지’ 물었다”면서 “머스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그는 ‘진지하다’고 했고, 그것을 저커버그에게 다시 전달했다”고 밝혔는데요. 이후 화이트 회장은 매일 밤 두 사람과 따로 통화하면서 대결 주선에 나섰다고 합니다. 지난달 27일에는 새벽 12시 45분까지 두 사람과 통화했고, 둘 다 대결을 원한다고 했다는 설명이죠.
화이트 회장은 지난 열흘간 머스크, 저커버그와 함께 협상을 벌였으며, 조금씩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결이 성사될 경우 시범 대결(exhibition match)의 형태가 될 것이며, UFC가 공식 관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죠. 머스크와 저커버그는 자선 성격의 이벤트가 돼야 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대결 장소로는 라스베이거스를 선호한다는 전언인데요. SNS상 언쟁이 실제 격투기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겁니다.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설전은 지난달 22일 시작됐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트위터의 대주주인 머스크에게 메타의 새 SNS ‘스레드(Threads)’를 언급하면서 “트위터의 라이벌이 되겠냐”고 묻자, 머스크는 “무서워 죽겠다”고 조롱했는데요. 이를 본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신) 위치를 보내라”고 했고, 머스크는 종합격투기 경기장인 “라스베이거스 옥타곤”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옥타곤은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UFC) 시합이 열리는 팔각형 링을 말하죠.
두 억만장자 CEO의 대결 성사 여부에 큰 관심이 쏠린 가운데 일론 머스크의 모친인 메이 머스크가 “농담이 아니다. 말로만 싸워라. 더 웃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며 대결을 말리고 나섰지만, 머스크가 인공지능(AI) 연구가 렉스 프리드먼과 주짓수를 맹훈련하는 모습이 공개되며 화제를 더했습니다. 프리드먼은 15년 이상 주짓수를 해온 블랙벨트 소유자로, 저커버그의 주짓수 ‘스승’이기도 하죠. 그는 저커버그와 주짓수 훈련을 하는 모습을 지난달 26일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대결 가능성이 커지면서 승패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화이트 회장은 NYT에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두 체급에 속해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실제로 머스크는 저커버그보다 70파운드(31.75㎏) 더 나간다고 합니다.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공식 종합격투기 시합에서는 비슷한 체급의 선수끼리 대결하죠. 머스크는 화이트 회장에게 “나는 살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체급 우위를 이용하겠다는 말입니다. 또 머스크는 키 190㎝에 달하고, 저커버그는 170㎝ 초반이라 두 사람의 체급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반면 나이와 경험 면에서는 저커버그가 앞서는 탓에 승부를 섣불리 확언할 순 없습니다. 머스크가 52살, 저커버그가 39살로 나이 차(13살)가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커버그는 종합격투기 마니아로 2~3년간 주짓수를 훈련해왔습니다. 주짓수 지역 대회에 출전해 메달을 따내기도 했죠.
미국 CNBC에 따르면 두 사람이 UFC 옥타곤에서 대결할 경우 유료 시청(PPV) 요금은 100달러(13만 원)로, 전체 흥행 수입은 10억 달러(한화 약 1조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지금까지 격투기 역사상 최대 흥행 경기였던 2017년의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코너 맥그리거의 복싱 대결을 뛰어넘는 규모죠. 당시 PPV는 80달러(약 10만 원), 흥행 수입은 6억 달러(약 7856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화이트 회장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싸움이 될 것”이라며 “모든 유료 시청 기록을 깰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저커버그의 승리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합니다. 이는 머스크의 호감도가 저커버그 보다 낮아진 탓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유는 바로 ‘트위터’ 때문입니다. 1일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여러 국가에서 트위터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에 접속한 이용자들에겐 ‘한도 초과’, ‘트윗을 검색할 수 없다’ 등의 오류 메시지가 표시됐습니다.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극단적인 수준의 데이터 수집과 시스템 조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 제한을 적용했다”고 알렸는데요. 유료 인증 계정은 하루에 읽을 수 있는 게시물을 6000개, 무료 비인증 계정은 600개, 새로운 비인증 계정은 300개로 제한하겠다는 설명입니다. 구체적인 해제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순간에 트위터 활동에 제한이 생기자, 이용자들 불만도 폭주했습니다. 머스크는 몇 시간 뒤 다시 글을 올려 하루에 열람 가능한 글의 개수를 유료 인증 사용자의 경우 1만 개, 무료 비인증 계정 1000개, 새로운 비인증 계정 500개로 늘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휴대전화에서 멀리 떨어져서 가족과 친구를 만나라”며 “우리는 모두 트위터 중독자다. 밖에 나갈 필요가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죠.
트위터는 전날엔 온라인 검색을 통해 게시물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도 막았습니다. 이전에는 로그인하지 않고도 검색을 통해 공개 게시물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제 트위터 계정으로 로그인하지 않으면 아예 글을 볼 수 없도록 바뀐 겁니다.
이는 머스크가 벌여온 ‘유료화’ 정책과 같은 맥락입니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인수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기업이 트위터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해 AI 언어 모델 훈련에 쓰고 있다며 여러 차례 불만을 제기했는데요. 실제로 머스크는 외부 서비스가 데이터를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한 바 있습니다. 머스크가 이번에 강행한 게시물 읽기 제한도 트위터의 데이터가 AI 훈련에 무료로 쓰이는 걸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광고 이외 수익원을 확대하고자 유료 서비스와 데이터 사용 수수료를 도입한 트위터의 시도는 다른 업체들의 모방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트위터가 올 2월 다른 기업이 자사의 앱에 연결할 때 쓰는 기술 표준인 API 접근 요금으로 월 4만2000달러(약 5500만 원)를 부과하자, 몇 주 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도 API 요금제를 도입했습니다.
또 트위터가 월 8달러(약 1만 원)의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자, 메타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월 11.99달러의 유료 인증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올해 2월 밝혔습니다. ‘메타 베리파이드’(Meta Verified)라는 이름으로 호주, 뉴질랜드에서 시작해 다른 나라로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죠.
즉 머스크의 행동이 업계 표준이 되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SNS 유료화가 확산하면서 이용자들은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요. 이들이 격투기 대결에서 저커버그의 승리를 바라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여론조사 기관 해리스폴은 매년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100개 기업 평판 순위를 조사해 발표합니다. 올해 3월 11일부터 4월 2일까지 미국 소비자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기업 평판 순위 100’에서는 삼성전자가 6위에 올라, 기술 기업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죠.
반면 SNS 기업은 모두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메타, 트위터는 각각 97위와 98위를 나란히 기록했는데요. 이는 틱톡(94위)보다도 뒤진 순위입니다. 틱톡은 미래 성장 가능성 측면에선 80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신뢰도와 시민적 감수성 측면에서는 60점대 초반의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메타와 트위터는 모두 신뢰도와 윤리, 시민 감수성 측면에서 60점대 미만으로 혹평받았죠.
악시오스는 “최근 몇 년간 SNS 기업들이 사생활 데이터, 가짜 정보 유통, 콘텐츠 통제, 표현의 자유 등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거리를 만들어내면서 대중의 평판이 악화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수장의 이미지 악화도 부진한 성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때 성공한 사업가, 혁신가의 이미지였던 머스크는 잇따른 기행으로 호감도가 많이 낮아졌고, 저커버그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인기가 틱톡에 밀리면서 ‘한물 간’ 이미지에 휩싸였는데요. 두 사람이 격투기 대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저커버그가 ‘비전 있는 혁신가’ 이미지를 추구하고, 대중이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지난달 보도했습니다. 자신보다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숱한 화제를 빚는 머스크를 이용해 기존 올드한 이미지의 반전을 꾀한다는 분석이 나왔죠. 머스크 역시 격투기 대결을 비호감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설명인데요. 바스카르 차크라보르티 터프츠 대학 학장은 두 사람의 대결을 두고 “무료 광고인 셈”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일각에선 글로벌 IT 업계의 대표 주자인 머스크와 저커버그의 대결이 실적 악화 등 각종 악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마냥 농담같았던 두 사람의 격투기 대결은 점차 살을 붙여가며 윤곽을 드러내고 있어 기대를 더하고 있죠.
화이트 회장이 누리꾼 5만9600여 명을 상대로 승자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3만1000여 명(52.3%)이 ‘머스크가 이긴다’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연 ‘테크 큰형’들의 대결이 성사될지, 그리고 대결에서 승리해 이미지 반전을 거머쥘 주인공은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