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매수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고공 행진하자 동학개미들이 고민에 빠졌다. 주가가 오른 기쁨도 잠시, 종목 토론방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적당한 선에서 차익실현을 하고 나올지 주식을 더 들고 갈지 의견을 묻는 글들이 많아지고 있다. 외국인까지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서 고민은 더 깊다.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반도체 사랑이 선순환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기대와 경제 상황이 나빠진다면 외국인이 한꺼번에 발을 빼고, 국내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바이 코리아’는 착시?=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6월 이후 ‘팔자’로 돌아섰지만, 올해 들어 장바구니에 여전히 12조1326억 원 규모의 주식을 담고 있다. 지난 한 해 6조8066억 원어치를 내다 팔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인 수급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연초 대비 12.71% 이상 상승했다.
외국인은 특히 반도체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올해 외국인의 삼성전자 순매수 규모는 12조3077억 원, SK하이닉스는 1조5718억 원에 달한다. 두 종목의 순매수액(약 13조8795억 원)은 전체 외국인 순매수 규모를 뛰어넘는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든 점을 외국인 유입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또 원·달러 환율이 이달 초까지 1300원 선에서 등락하는 등 강달러 기조가 이어진 것도 ‘사자’에 힘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외국인들은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바이 반도체’ 행보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반도체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외국인의 추가 매수세를 기대하게 한다. KB증권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8만5000원에서 9만5000원으로 11.8% 상향 조정했다. 역대 삼성전자의 장중 최고가였던 9만6800원(2021년 1월 11일)에 근접한 숫자다. 종전 최고 목표주가인 9만 원(유안타증권·키움증권·SK증권·유진투자증권·IBK투자증권)을 훌쩍 뛰어넘으며 향후 10만 원대 목표주가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국인의 ‘K-반도체’ 편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시장의 한 전문가는 “혁신 기업을 키워내지 못한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라면서 “반도체 업황이 예상을 벗어난다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지나친 걱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가총액 기준 매수강도를 보면 외국인은 삼성전자 보다 현대자동차, LG전자, 두산에너빌리티를 더 샀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순매수가 마무리됐다고 보기는 이르다”면서 “반도체를 비롯해 외국인 비중이 감소한 종목들에 대한 단기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장 급변할 땐 부메랑 될 수도=시장에서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추가 매수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반도체와 한국 경제의 탄탄한 체력을 꼽는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연초부터 삼성전자 매수를 많이 하긴 했지만, 순환매가 아직 다 돌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여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번 매도세는 추세 전환은 아니며, 일부 매도하고 숨 고르기를 하는 중으로 향후 3분기 수출입지표나 중국 관련된 경제지표, 무역수지 흑자 전환 등 기초 지표를 확인 후 추가 매수가 들어올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 연속 이어진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 지난달(11억3000만 달러 흑자) 마침표를 찍었다. 산업활동의 3대 지표인 생산·소비·투자도 동시에 플러스(+)를 기록하며 하반기 경기 반등에 청신호가 켜졌다. 하반기 반도체 경기만 회복되면 아직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한 수출도 ‘플러스 궤도’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JP모간은 “삼성전자 등 전기전자 업종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유가증권시장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다. 코스피 2600도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현재 18배로 다소 높은 수준이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한국전력 등을 제외하면 PER이 13.7배로 낮아진다는 이유에서다. 강세 종목으로 자동차, 조선, 배터리 업체를 꼽았다.
장밋빛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미국이 여전히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고,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확대될 여지가 남아 있다. 특히 한미 금리 역전 폭 확대로 자본 유출 위험이 커졌는데 무역수지가 언제 적자로 돌아설지 모르는 상황이고, 재정건전성 악화 등 한국 경제 투자 매력마저 예전 같지 않다. 경제 기초체력까지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른 속도로 이탈할 수 있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 경기가 글로벌 경기에 민감하다 보니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국면에서 국내 증시도 이를 피할 수 없다”며 “수급과 상관관계가 높은 환율이나, 수출경기 등도 모두 침체 우려 국면에서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의 자금 이탈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한미 금리 역전→주식·채권 등 자본 유출→원화값 하락→수입물가 상승→물가 악화’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