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기준 국가채무가 1088조7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달보다 16조 원, 지난해 말보다 55조3000억 원 늘었다. 기획재정부의 재정동향이 어제 이런 지표를 줄줄이 쏟아냈다.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5월까지 정부 총수입과 총지출은 각각 256조6000억 원과 287조4000억 원을 기록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30조8000억 원 적자,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는 52조5000억 원 적자였다. 나라 곳간 사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관리재정수지다. 이 수지가 4월에 소폭 개선되나 싶더니 5월에 다시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까지 적자 규모는 올해 연간 전망치(58조2000억 원 적자)에 거의 근접했다.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9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골자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냈다. ‘재정준칙’을 입법화하자고 한 것이다. 나라 곳간은 민생을 지킬 최후의 방파제다. 정부의 경기부양이나 정치권 포퓰리즘 때문에 곳간이 거덜 나지 않도록 보호장치를 두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미 세계 105개국이 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 2개국뿐이다. 지난해 개정안이 나왔으니 속히 처리돼야 마땅했다. 하지만 여야의 무능과 방해로 아무런 진척이 없다. 국회 길목에서 재정준칙을 가로막는 여야 일부 의원은 지난 4월 선진국을 벤치마킹한다며 스페인 프랑스 독일 3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국고만 축낸 ‘외유성 출장’에 그쳤다. 우리보다 재정 상태가 안 좋은 스페인에서 “정부가 원하는 대로 돈을 썼다”는 황당한 답변이나 들었을 뿐이다. 그 유럽 3개국 여행 이후 재정준칙은 또 국회 서랍에서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44.6%를 기록 중이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가 국제통화기금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지난해 기준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54.3%다. 서로 상충하기도 하는 통계들이 한목소리로 내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아직 다른 선진국보다 적은 편이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압박을 받으면서 각국이 거의 무분별한 수준으로 돈 풀기에 나섰던 지난 3~4년간을 봐도 그렇다. 이 기간에 주요 선진국 부채는 평균 5.4%포인트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아니다. 부채가 12.2%포인트 상승했다. 다른 나라의 2배 이상 부채를 키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빚더미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 추세를 방치한다면 어떤 파탄을 맞게 될지 알 길이 없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인구학적 곤경이다. 재정준칙 도입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경고음이 이렇게 도처에서 울려 퍼지는데 국회는 눈을 감고 있다. 대체 뭘 믿고 저러는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