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할퀸 수마로 인해 강과 하천의 둑과 제방이 무너지면서 곳곳에서 수해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13일부터 18일까지 엿새 동안 내린 폭우로 42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습니다. 이재민도 전국 3787가구 5686명이 발생했는데요.
특히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사전에 위험이 경고됐는데도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차량 통제를 하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일어난 ‘인재’로 꼽히고 있습니다. 관계 기관들이 ‘네 탓’ 공방 속 컨트롤타워 부재가 피해를 더 키웠다는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오송 지하차도 침수 현장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타인의 생명을 구한 시민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손을 내밀어 타인의 생명을 구한 의인(義人)들이죠. 수해 현장 곳곳에서 소방대원과 군인, 경찰이 실종자 수색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습니다. 자연재해를 포함 모든 재난 대응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수해민 구호는 뒷전으로 밀린 채 관리 책임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공방 속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운 다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사조차 장담하지 못한 상황 속 타인을 구하고자 기꺼이 손을 내밀어 생명을 구한 의인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15일 아침. 무려 6만t 이상의 강물이 삽시간에 쏟아져 차들이 고립되면서 14명의 목숨을 잃은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제2지하차도. 이날 사고 당시 충북 증평군수도사업소 하수도팀장인 정영석씨는 휴일이었지만 집중호우에 대비한 비상근무를 위해 세종시 자택에서 증평군으로 출근하던 길이었습니다. 정씨는 차량이 침수되면서 지붕으로 대피한 순간 “살려달라”는 다급한 외침을 들었습니다. 정씨는 3명을 건져내 탈출했는데요.
이후 공개된 정씨의 양손 바닥 사진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보여줍니다. 정씨는 난간 등 온갖 구조물을 잡고 버텨냈습니다.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물 속에서 스티로폼이나 나무 판자 같은 걸 잡고 떠 있는데 화물차 기사 분이 저를 먼저 꺼내주셨다”며 자신도 다른 시민의 도움을 받아 구조됐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는데요.
정씨를 구한 사람은 앞서 시민 3명을 구한 것으로 알려진 14t 화물차 운전기사 유병조 씨였습니다. 유씨는 14t 화물차를 몰고 궁평 제2지하차도를 통해 출근하던 중 물이 계속 차오르자 창문을 부숴 화물차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버스 안에서 휩쓸려 나온 20대 여성이 화물차 사이드미러를 간신히 붙잡고 버티는 걸 발견했습니다. 유씨는 여성을 자신의 화물차 위로 끌어 올려 구조한 뒤 이후 또 다른 남성 2명도 구조했습니다.
긴박했던 순간 시민들끼리의 구조로 정씨와 유씨를 포함해 침수 당일 생존한 9명 중 8명이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남았습니다.
오송 지하차도에 고립됐던 버스를 몬 50대 운전기사 A씨 역시 의인입니다. A씨는 지하차도가 침수될 때 물살이 거세 버스가 움직이지 못하자 승객들에게 “창문을 깨드릴테니 빨리 탈출하라”고 말했는데요. 그는 승객을 탈출시키고 남아 있는 승객을 구하려 버스로 돌아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이상기후(극한호우)에 침수 사고가 반복되면서 지하공간에 대한 침수 예방대책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기존 재난안전관리체계가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를 예방하지 못하는 등 관리 허점을 드러내면서인데요.
참사 발생 후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직후 관계기관들의 책임 전가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경찰이 인파관리를 할 줄 알았다”는 용산구청의 주장과 “주최가 없는 인파 사건은 경찰 매뉴얼에 없다”는 경찰의 공방은 9개월이 지난 현재도 여실히 허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먼저 충북도는 금강홍수통제소로부터 사고 4시간 전에 위험 통보를 받고도 교통통제 협조 요청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청주시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며 “미호강 제방 높이만 낮추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화살을 청주시로 돌렸습니다. 이에 청주시는 “해당 도로 통제 권한은 충북도에 있다”며 따로 연락받지 않아 대응하지 않았다고 발뺌했습니다. 여기에 112 신고를 받고도 잘못된 장소로 출동한 경찰과 제방 둑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는 내용만 전파하고 사고 직전 현장을 떠난 소방당국. 흥덕구청은 “재난 대응 매뉴얼도 없다”고 했고 경찰과 소방당국은 인력부족 핑계를 댔는데요.
이는 158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시, 구청, 경찰, 소방, 호텔이 서로 책임을 미루던 모습과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매뉴얼’상 인파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과 소방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주장,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제때 통제를 하지 않은 탓이라며 지자체·유관기관들은 책임 공방에만 급급한 상황입니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가운데 처음으로 ‘중대시민재해’로 처벌되는 사례가 될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지자체의 재난 매뉴얼이 있었고 기상 특보 등 기상 상황이 예보됐던 만큼 3년 전 부산 지하차도 침수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2020년 부산 초량1지하차도 사고에서도 재난 매뉴얼은 관할 공무원들의 실형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는데요. 당시 검찰은 각종 매뉴얼에도 지자체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당시 지자체 공무원들을 실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도 차량 통제를 하지 않은 데다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안내 전광판은 고장 나 있었습니다.
일단 공중교통수단 관리 결함으로 사망자 1명 이상이 발생한 만큼 이번 사고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합니다.
또 오송 지하차도는 지하구간 100m 이상의 시설물로 중대재해처벌법상 규정된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됩니다. 공중이용시설인 지하차도에 대한 관리 소홀 자체만으로 지자체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적절히 관리해왔는지를 따져야 하는데요. 현재까지 지적된 홍수 예보가 있었음에도 교통을 통제하지 않았고 미호강 인근 임시 제방을 부실하게 쌓았다는 점이 참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만큼 이를 살펴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만들기 운동본부 손익찬 변호사는 1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를 적용할 수 있는 관건은 ‘관리 소홀’에 대한 입증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손 변호사에 따르면 지하차도도 공중이용시설로 들어갈 수 있고 미호강 같은 경우도 국가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호강 제방에 관리상의 결함이 원인이 된다면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실종자 수색이 끝나면서 충북경찰청은 17일 수사관 88명을 투입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담 수사본부를 꾸렸습니다. 본격적인 책임 규명을 위한 수사가 시작된 것이죠. 국무조정실도 예외는 없다며 강도 높은 감찰을 예고했는데요.
이번 집중호우는 두 달 전부터 수차례 예보됐지만 전국 곳곳에서 침수 관련 사고가 잇따랐고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관리 역량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 등에 대비한 새로운 기준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있는데요. 합의 지자체에서 벗어나 철저한 사후관리와 피해 복구를 넘어 전례 없는 수준의 대응전략을 갖춰 중앙정부가 중앙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때라는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