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영국, 캐나다 등 앞다퉈 출혈 경쟁
미국에 공장 뺏기지 않으려 막대한 예산 지출
전문가 “상당한 규모의 낭비, 경제적 왜곡 증가”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파격적인 조치를 통해 국내 제조업에 보조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에 유럽과 캐나다 등 미국 동맹국도 보조금 전쟁에 뛰어들면서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제로섬게임’에 놓이게 됐다. 동맹을 긴장시키고 예산을 위태롭게 하며 전례 없는 규모의 공적 현금을 민간기업에 투입하는 글로벌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독일 정부가 첨단 반도체 공장에 200억 유로(약 28조 원) 상당의 보조금을 투입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조금은 2027년까지 독일과 다국적 기업에 분배되며 기후변화기금(KTF)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1800억 유로 규모의 KTF는 애초 탈 탄소 정책을 위해 설립됐지만, 정부가 보조금 지출 등을 위해 사용 범위를 확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보조금 경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영국 정부는 인도 타타그룹에 5억 파운드(약 8228억 원) 이상의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고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유치했다. 현재 타타그룹은 영국계 브랜드 재규어·랜드로버를 보유하고 있고 향후 자체 생산한 배터리를 이들 차량에 탑재한다는 방침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번 투자는 영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패배자들도 나오고 있다. 스페인은 타타의 재규어·랜드로버 공장 유치 경쟁에서 영국에 밀렸고 테슬라로부터 발렌시아 공장 건설을 거부당했다. 노르웨이도 2025년까지 54억 달러 상당의 지원책을 내놨지만, 자국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신설하는 것을 막진 못했다.
캐나다에선 보조금 지원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공장을 짓기로 했던 스텔란티스가 돌연 미국으로 터를 옮기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크라이슬러와 지프 브랜드를 소유한 스텔란티스는 IRA 수준의 지원을 요구했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지난해 3월 10억 캐나다달러 수준이던 지원금을 이달 국가 역사상 최대 규모인 150억 캐나다달러(약 15조 원)까지 늘렸다. 해당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캐나다 정부에 감사 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출혈 경쟁이 계속되면 세계 각국은 향후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미국 협상단에 몸담았던 스티븐 올슨 힌리치재단 선임 연구원은 “글로벌 보조금 전쟁은 결국 상당한 규모의 낭비와 경제적 왜곡 증가, 불확실한 일련의 최종 결과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