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이후 모든 건물이 무너진 상황, 유일하게 형태가 온전히 남은 황궁아파트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대거 몰려든다.
입주민 대표를 맡은 영탁(이병헌)은 외부인을 가혹하게 내쫓고, 죄책감에 망설이는 젊은 주민 민성(박서준)에게 마음을 다잡으라 당부한다. 민성의 아내 명화(박보영)는 극한재난 상황에 타인을 사지로 내모는 영탁의 행동에 끝내 분노한다.
31일 오후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첫선을 보인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최후의 안전지대로 남은 ‘아파트’를 두고 생존자들이 벌이는 싸움을 다룬 드라마다.
입주민 대표 영탁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열연을 중심으로 권력자, 추종자, 반란자 등의 군상을 다수 등장시키면서 위기 상황에서 벌어질 법한 갈등과 대처를 신랄하게 묘사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엄태화 감독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선택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그 선택을 대신해 줄 사람을 찾지 않을까 했다”면서 “약간은 등 떠밀리듯이 자리에 올라가게 된 영탁이 점점 바뀌어 가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작품 연출 의도를 전했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곳은 여러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엄 감독은 “당장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갔을 때 이런 재난이 닥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생각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잘 살려 현실성을 살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경기 연천의 대지에 아파트 주차장과 3층 건물을 지어 촬영했다. 대지진 발생 순간의 장면과 폐허가 된 건물더미를 상공에서 비추는 등의 장면은 VFX로 구현했다.
다만 재난물로서의 스펙터클보다는 아파트를 둘러싼 한국 사람들의 집착적인 정서와 행동에 집중한 디스토피아 드라마로서의 비중이 크다. 제작비는 약 18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이병헌은 “극단적인 선악이 아니라 상식적인 선 안에서의 선악이 존재한다”면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조금씩 다르게 보여져 다양하다”고 작품의 매력을 손꼽았다.
이병헌은 “그런 보통의 인간이 모여 극단적인 상황을 맞았을 때 보여지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정말 오랜만에 이런 종류의 ‘사람의 이야기’를 접해 신나게 촬영했다”고 촬영 소감을 전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여름 극장가 대작의 마지막 주자이기도 하다. 26일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밀수’와 2일 개봉하는 김용화 감독의 ‘더 문’,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 작전’의 뒤를 이어 9일부터 관객과 만난다.
이날 여름 극장가를 노리고 개봉하는 작품으로서는 다소 무겁게 느껴진다는 작품 평가가 나오자 엄 감독은 “주제 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는 소재인 만큼 만드는 내내 거기에 매몰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인물의 선택과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보다 보면 무더위를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9일 개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