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15개 단지 부실시공 사태는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감리 부실 모두가 공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주차장 붕괴와 보강 철근 누락은 무량판 구조에 대한 건설업계의 낮은 이해도와 함께 공사 기간 단축에 급급한 시공과 전관예우로 점철된 감리업체 등이 빚어낸 괴물이라는 것이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우선 설계 분야에선 낮은 설계비용에 따른 품질 저하 문제와 함께 발주처와 시공사 등을 거치면서 설계 단계부터 비용 절감을 염두에 둔 도면 설계가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설계업계는 고질적인 저가 설계 문제를 겪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공공분양 건축설계 요율은 지난 1993년 이후 사실상 오르지 않았다. 이후 28년 만인 2021년 평균 3.3% 인상됐다. 다만 민간 부문은 여전히 요율 개선이 진행되지 않아서 저가 설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건축사협회는 민간 분야에서도 공공대가 기준이 적용되도록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 건축가는 발주처와 시공사를 거치면서 비용 절감 압박을 받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 건축가는 “한국에선 구조 설계를 할 때 토목과 전기, 통신, 소방 등 다른 업체들이 참여해 취합하는 방식으로 설계가 진행되는데 모든 업체가 투입량 100이 필요하다면, 실제로 130 정도로 설정한다. 그만큼 중간에 비용 절감 압박이나 자재 등을 빼돌리는 것을 고려하고 설계를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시공 분야에선 최저가 수주에 거듭되는 하도급으로 인건비 하락과 이에 따른 시공 품질 저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하는 현장을 보면 안일한 경우가 허다하다”며 “특히, 현장에선 철근 시공 관련 도면도 못 보는 기술자가 들어온 경우도 본다. 도면도 못 보니 철근을 어떻게 매느냐에 따라 하중을 받는 것이 굉장히 달라지는데 (이해 부족으로) 엉망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철근공의 임금은 일당 25만 원 이상으로 비싸다. 이를 아끼기 위해 일부 현장에선 정식 철근공 대신 보조공을 투입해 철근을 매도록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특히 무량판 구조는 철근 시공이 매우 촘촘하게 들어가고, 정확한 시공이 필요해 도면 이해도가 떨어지는 기술자가 투입되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건축 안전을 책임질 감리 단계에서도 전관 업체 독점 등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LH 부실시공 15개 단지 감리를 맡은 업체 상당수가 LH 전관 기업으로 확인된 바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사현장 감리를 맡은 업체가 LH 전관 업체였다며 감사원에 실태조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아예 감리업체를 감독하는 ‘옥상옥’ 조직 기구 신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관 특혜를 없애기 위해 아파트 공사를 포함한 발주 관련 평가와 심사를 외부 기관에 맡기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전문가는 건설업계의 설계와 시공‧감리 총체적 부실 타파를 위한 구조 개혁과 함께 실질적인 해결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는 “감리자가 철근 누락과 하중 문제 등의 잘못을 판정할 실력이 없어서 발생한 사태”라며 “감리자는 건축사만 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해 실제 구조 전문가인 기술사가 감리에 참여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제도가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설계와 그에 충실한 시공 부재 등 원칙을 지키는 실행역량 부족에서 발생했다”며 “원칙 시공에 추가 비용이 들면 이를 건설비에 처음부터 반영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