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주민 정책’ 딜레마 빠진 멕시코

입력 2023-08-10 05: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이주 송출국서 유입국으로 전환

범죄증가 등 반이민정서 높아져

보편가치 충돌…한국도 주시해야

국제이주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으며, 많은 국가가 국제이주 증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국제이주기구는 국제 이주민 규모가 2020년 2억 8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3.6%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이다. 같은 연도 기준 전 세계 난민 수는 약 2천 600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망명 신청자 수도 400만 명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여러 나라에서 통치 위기가 가중되면서 모든 유형의 국제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자발적·비자발적으로, 합법적·비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주민 유입의 증가로 사회 인적 구성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멕시코만큼 국제이주의 흐름으로부터 극적인 영향을 받는 나라는 드물다.

국제이주 맥락에서 멕시코는 전통적인 이주 송출국으로 조명받아 왔다. 국제이주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이주민에 대한 것이다. 미국에는 1000만 명이 넘는 멕시코 출신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국제송금 규모도 크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2021년 멕시코 출신 이주민이 본국으로 보낸 송금액 510억 달러 중 94.9%가 미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산했다.

멕시코는 이주 송출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 왔지만, 이제는 멕시코를 이주 유입국으로서도 조명해야 할 때다. 최근 멕시코 내 망명 신청자 수와 불법이주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2021년 한 해 동안 멕시코 내 망명 신청이 13만 건에 달한 것으로 보고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수다. 한편, 멕시코 이민 당국은 2021년 한 해 동안 30만 명이 넘는 불법 이주민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큰 수다. 이와 함께 합법적 경로로 유입되는 이주민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멕시코행 이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먼저 이웃 나라에서 이주 송출 압력이 유례없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중미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카리브해의 아이티, 남미의 베네수엘라 등에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멕시코행을 택하고 있다. 자국의 치안 불안,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위기, 정치적 박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다양한 유형의 이주를 통해 회피하려는 것이다.

멕시코 내 이주민의 전례 없는 증가는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에서 이어져 온 미국의 억제적 이민 정책 기조와도 연관이 있다. 두 정부는 미·멕시코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에 강경하게 대응해 온 것은 물론이고 망명 신청도 억제해 왔다.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미국으로 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려던 타 국가 출신 이주민이 멕시코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아예 멕시코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졌다.

멕시코 정부 입장에서는 합법적 경로로 유입되는 이주민보다 사회적·법적 지위가 모호하고 신분이 불안정한 망명 신청자나 불법이주민의 급증이 더 부담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남미 범죄 조직의 폭력, 강도, 납치, 인신매매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조금씩 고개를 드는 멕시코 내 반이민 정서와 인류 보편적 가치의 충돌도 정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한다.

난민·이민 당국 역시 망명 신청자와 불법이주민의 급증으로 행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이주 유입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난민·이민 관련기관의 행정력을 보강하는 대신 난민 신청을 억제하고 불법 이민 방지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잡았다. 이주민을 보내는 데 익숙했던 멕시코가 전례 없는 이주민 유입을 경험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특수한 국제이주 맥락에 놓인 멕시코를 계속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