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의 큰손인 연기금이 지난 달부터 16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유가증권시장내 이차전지 종목을 중심으로 대거 매물을 쏟아내고 있어 코스피 지수의 하방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때 증시가 폭락장을 겪으면 적극적 매수에 나서 지수를 끌어올려주던 국민연금의 큰손 행렬은 더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1일까지 16거래일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 중이다. 연기금이 16거래일 넘게 순매도에 나선 것은 2021년(3월 17~4월 15일·22거래일) 이후 약 2년 만이다. 이 기간 연기금이 팔아치운 금액은 8689억 원어치에 달한다. 지난달 순매수액(-3004억 원)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연기금은 올해 들어 3월(2784억 원) 단 한 달을 제외하고 일제히 매도 우위를 보여왔다. 이달 순매수액은 -7163억 원으로 이 추세대로면 8월 전체 순매도 규모가 올해 월별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초 이후 연기금의 순매도액(지난 11일까지)도 마이너스(-)2조8910억 원으로 전년 동기(-5010억 원)보다 큰 폭 뛰어 올랐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12조 8900억 원을 사들인 것과 대조적이다.
시장별로 보면 연기금은 특히 코스피 시장(-9677억 원)에서 매도세를 확대하며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151억 원)의 순매도 규모는 그보다 작은 편이다. 실적주, 리오프닝주, 정유주 등을 담은 반면, 이차전지 종목들은 대거 덜어냈다. 최근 국내 주식에서 이차전지가 단기 고점에 도달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연기금이 집중적으로 내다판 순매도 상위 20위 종목을 보면 POSCO홀딩스(1위, -3662억 원), LG화학(9위, -649억 원), LS(11위, -562억 원)등 이차전지 관련 종목들이 11개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삼성전자(2위, -2520억 원), LG전자(4위, -1000억 원)와 기아(5위, -988억 원), 현대차(6위, -814억 원)도 상위권에 들었다.
반면 연기금은 NAVER(네이버) 주식을 949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2분기 역대 최대 실적과 초대형 인공지능(AI) ‘하이퍼 클로바X’를 이달 내 공개한다는 계획 등이 나오면서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모레퍼시픽(874억 원), 호텔신라(466억 원), LG생활건강(357억 원), 현대백화점(317억 원) 등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수혜주들도 사들였다. 중국 정부가 11일 중국인의 한국 단체 여행을 허용한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화장품, 관광 리오프닝 기업은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최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완화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자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정유주도 일찌감치 매수에 나섰다. S-Oil(-788억 원), SK이노베이션(384억 원) 등을 순매수했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총 투자규모를 꾸준히 줄여오고 있다. 기금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향후 차익실현을 위해 보유자산을 처분할 경우 국내 증시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한 대형사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대신 해외투자 또는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증시가 하락한다고 해서 국내 주식 목표분을 채우기 위해 추가 매수에 나서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투자 비중 확대에도 전체 수익률이 미비하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총 투자액은 125조373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위탁운용 규모는 63조3402억 원으로 직접운용(62조328억 원) 규모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위탁운용 수익률이 직접운용 수익률을 넘어선 것은 단 한 차례(2021년)에 그친다.
한편, 코스피 지수는 이달 들어 9거래일 중 2거래일을 제외하고 모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1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보다 0.40%(10.30포인트) 내린 2591.26에 거래를 마쳤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2630선에서 2600선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