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와 ‘맥신’ 관련주가 국내 증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들 관련주는 엎치락뒷치락 상ㆍ하한가를 반복하며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데요.
21일 신성델타테크, 덕성, 파워로직스는 일제히 하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이들 종목은 지난달 말부터 시장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였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이날 서남은 27.8% 급락했고, 서원·모비스·LS전선아시아·원익피앤이는 각각 10%대 하락률을 보였습니다.
반면, 맥신 관련주는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이날 휴비스는 유가증권시장에서 29.94% 오른 842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는데요. 또 다른 맥신 관련주 코닉오토메이션(6000원)과 나인테크(6250원), 경동인베스트(13만1400원) 등도 30% 가까이 올랐죠.
그런데 22일 급등했던 맥신 관련주가 초전도체 관련주와 비슷한 흐름을 나타내며 이날 종가 기준 급락했습니다. 반대로 초전도체 관련주는 상승세를 보였죠. 이에 전문가들은 막무가내 ‘테마주’ 투자에 우려를 나타내는 상황입니다. 두 테마주를 둘러싼 이슈부터 관련주 현황까지 살펴봤습니다.
먼저 초전도체 관련주가 상승 동력을 잃은 건 최근 잇따른 연구 결과 발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엔 세계 최초로 ‘상온상압 초전도체’ 합성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담긴 두 개의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회사의 연구자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근무했던 김현탁 박사 등이 저자로 참여했는데요. 이들은 새롭게 발견한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LK-99’라고 명명했습니다.
초전도체는 전기 저항이 없어 자기장을 밀어내는 특성으로 자기부상열차, 양자컴퓨터, 핵융합장치 등 개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초소형 발전기를 통해 초고용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전력 손실이 전혀 없는 송배전 설비, 배터리도 나올 수 있습니다. 상용화된다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 사용량도 대폭 줄어들어, 환경친화적인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꿈의 물질’이죠.
이에 전 세계 연구진도 초전도체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초전도체는 영하 200도 이하의 극저온, 혹은 대기압 100만 배 이상의 초고압 환경에서만 구현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국내 연구진이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주장을 내놨으니, 학계의 관심도 쏠렸던 건데요. 세계 각지 대학, 연구소에서는 논문 속 내용대로 초전도체를 구현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회의적인 여론이 짙어졌습니다. 중국 베이항대 연구진은 LK-99가 상온에서 전기 저항이 ‘0’이 아니었고, 자기부상 현상도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인도 국립물리연구소도 LK-99가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실험 결과를 내놨죠.
여기에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가 이달 16일(현지 시간) ‘독일 연구진의 연구 결과,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방점을 찍었습니다.
파스칼 푸팔 박사가 이끄는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 연구팀이 LK-99의 순수한 단결정 합성에 성공했으며, LK-99 단결정은 초전도체가 아니라 오히려 절연체임을 밝혀냈다는 건데요. 연구팀은 14일 공개한 이 연구에서 한국 연구팀이 제시한 초전도 유사 현상은 LK-99 제조 과정에서 생긴 불순물인 황화구리로 인한 것이라며 “우리는 초전도 존재를 배제한다”고 결론지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기점으로 초전도체 주에도 ‘줄줄이 하한가’가 찾아온 겁니다.
그리고 관심은 맥신으로 쏠렸습니다. 맥신은 높은 전기전도성을 갖춰 여러 금속화합물과 조합할 수 있는 2차원 나노물질인데요. 우수한 전도, 전자파 차폐 능력으로 전자기기, 반도체, 센서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 가능한 미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맥신을 만들어낼 때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방법이 없어 대량 생산이 어렵다는 겁니다. 맥신은 맥스라는 세라믹 물질을 불산 수용액에 담가 금속 원소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수용액으로 쓰는 산의 농도, 온도에 따라 맥신 종류와 합성 속도, 품질 등이 결정되는데요. 특히 수용액에 들어 있는 수산화물, 산소, 불소 같은 분자가 맥신의 표면에 남게 되는데, 어떤 분자가 어떻게 달라붙어 있느냐에 따라 맥신의 특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표면 분자의 형태에 따라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 맥신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최근 맥신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7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인도협력센터의 이승철 센터장 팀은 맥신의 자기수송 특성을 분석해 표면 분자 분포를 예측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표면에 붙은 분자에 따라 전기전도도나 자기적 특성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이를 토대로 맥신의 물성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간단한 측정으로도 맥신의 분자 분포를 분석할 수 있게 돼 생산과정에서 품질관리가 가능해지는 건데요. 즉, 맥신 대량 생산을 위해 맥신의 특성을 빠르게 예측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센터장은 “순수한 맥신의 제조 및 특성에 집중된 기존 연구와 달리 제조된 맥신을 쉽게 분류할 수 있도록 표면 분자 분석에 새로운 방법을 개발한 것에 의의가 있다”며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균일한 품질을 가진 맥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대량 생산 가능성에 맥신 주도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21일 맥신 관련주로 묶이는 휴비스, 코닉오토메이션, 나인테크 등은 모두 3거래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휴비스는 맥신 관련 고분자나노복합체와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고, 코닉오토메이션은 맥신 나노기술로 세탁할 수 있는 투명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개발한 최경철 카이스트 전자및전자공학부 교수가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습니다. 나인테크는 2차 전지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제조하는 업체지만, 맥신 등 나노 신소재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인 인인식 한국교통대학교 교수 연구팀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어 맥신 관련주로 묶였죠.
그러나 22일 나인테크는 22.48%, 코닉오토메이션은 17.25% 하락하며 상승분을 반납했습니다. 경동인베스트, 아모센스 등은 하한가로 내려앉았죠. 휴비스만 0.12% 상승한 채 장을 마감했습니다. 변동성이 큰 장세는 지난 2차 전지, 초전도체 대란 때를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투자 환경을 보면 신산업 기대감에 따른 가격 상승 모멘텀을 활용한 투자가 수시로 나타난다”면서 “맥신은 상온·상압 초전도체와 달리 이미 실체가 존재하는 신소재기 때문에 당분간 투자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테마주에 대한 우려가 더 큰 상황입니다. 먼저 테마주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주가 상승과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테마의 변화 주기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실로 2차 전지는 올해 상반기 증시를 주도했지만, 초전도체는 ‘한 달 천하’로 종결될 판이죠. 박스권 장세에 중국 부동산 시장 불안,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겹쳐져 국내 증시에 조정이 오자,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테마주로 시선을 돌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주식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는 ‘2차 전지→초전도체→맥신 시대’ 등의 글이 올라오면서 매수를 부추기고 있기도 합니다. 한탕 하려는 작전 세력과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개인 투자자들이 엉키면서 시장도 과열되고 있죠.
만약 국내 연구진의 초전도체 재현이 연기되더라도, 이는 상용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맥신은 이미 실체가 있는 신소재기도 합니다. 그러나 테마주는 한 번 급등하면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기 어렵고, 대외 변수로 시장 변동성이 커진다면 주가가 하락해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슈로 인해 특정 테마에 수급이 과다하게 몰리면 변동성 역시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