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간 편가르기로 통합 멀어져
다양성 아울러 집단지성 키워야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달리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비결은 집단을 구성하여 서로 협력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협력한다는 것은 다수의 개인들이 육체적 힘을 모으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정신적 힘을 모음을 의미한다. 집단 내 각 구성원이 가진 다양한 정보, 선호와 관점을 모아 발전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즉, 집단지성을 이끌어냄으로써 보다 나은 대안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식 특히 유용한 기술과 지혜는 개인보다는 집단 그중에서도 기업, 정부, 연구소와 대학을 비롯한 각종 단체, 지역사회, 국가에 내재한다.
그러나 집단을 구성하여 협력한다고 해서 늘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단사고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
제임스 서로위키는 ‘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라는 책에서 집단지성 또는 대중의 지혜가 발휘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집단 구성원의 다양성이 높아야 한다. 다양한 관점과 정보를 가진 구성원들이 모여야 개별 구성원들이 범할 수 있는 시각의 편협함과 정보 부족의 문제를 줄이고,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개별 구성원 의견의 독립성이 높아야 한다. 구성원들 각자가 독자적으로 의견을 결정할 때 집단 내 특정 개인의 의견이 권위적 강요나 군집행동 등에 의해 집단 내에 확산되는 것을 막고, 보다 나은 해법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셋째, 각 구성원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하되 이를 집단차원에서 통합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분권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통합이 가능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갖춘 집단이 각 개인의 결정을 집단 차원에서 상승(synergy)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 분권적 기업조직, 법무·의료·회계법인, 플랫폼, 클러스터 등이 이러한 절차를 갖춘 집단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체제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여 집단지성을 잘 발휘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시장경제는 경제적 자유를 개인에게 보장하여 각자의 고유한 관점, 전문성을 갖추도록 부추기고 이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높인다.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선거나 시장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여 의견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도록 지원한다. 이로써 구성원 각자의 선호와 이익이 명확하게 표출되어 사회적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게 된다. 또한, 선거와 시장가격 메커니즘 같은 절차를 통해 구성원의 의사를 집단 차원에서 상승적으로 통합한다.이로써 구성원 각자의 의사를 공평하게 반영하면서도 사회적 차원에서 정의롭고 효율적인 대안이 도출될 수 있다.
한국은 후발국 중 드물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아울러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단지성 획득에 더 자주 실패하고 있다. 주요 산업과 전문직업 내 경쟁 부족과 시장의 투기장(casino)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증가 속에 정치가 좌·우파로 양분되어 권력투쟁만 일삼으면서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가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은 이 투쟁에 일반 국민마저 끌어들였다. 그 결과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관점과 정보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 정치계는 물론 학계, 경영·노동계 등 각 분야에서 현실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실용적 해법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줄고 전문성과 기술 함양이 소홀해지고 있다.
동시에 정치경제적 현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서 양 정파 간 편 가르기가 강요됨에 따라 개인 의견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 양 진영 간 너 죽고 나 살자 식 대결이 심화됨에 따라 다양한 의견의 사회적 조정·통합도 어려워지고 있다. 수차례의 민주적인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정의와 이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과 정책의 상승적 통합보다는 양 진영 간 상호 배척과 정책의 근본주의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다양성과 이의 상승적 통합을 통한 집단지성의 발휘보다는 획일화와 진영 간 대립에 기반한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든 결과는 무력한 국가, 침체한 경제, 불행한 국민이다.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자유와 풍요가 넘치고 국민이 행복한 사회다. 그러나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우리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소수의 권력투쟁이 아니라 다수의 삶을 위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정립하여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을 꽃피우자. 그렇다면, 우리의 오랜 바람이 이내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