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러시아 항공 당국은 “추락한 비행기 탑승자 명단에 프리고진이 탑승했고, 바그너의 2인자인 드미트리 우트킨도 함께 있었다”며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항공기에는 7명의 승객과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러시아 긴급구조대는 시신 10구를 모두 수습했지만, 프리고진 시신이 발견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올해 62세인 프리고진은 푸틴의 고향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20세였던 1981년 강도·사기 등 범죄로 9년간 복역했다. 1990년 소련 붕괴 시기 출소한 그는 핫도그를 팔며 밑천을 마련했고, 러시아 각지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열었다.
당시 프리고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급 관료이던 푸틴을 손님으로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인연을 계기로 크렘린궁에서 열리는 각종 만찬과 연회를 도맡았고, 일명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게 된다.
프리고진이 본격적으로 푸틴의 신임을 얻게 된 건 2014년 바그너그룹 창설부터다.
바그너그룹은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위한 전쟁과 시리아, 리비아, 수단 등 세계 곳곳의 분쟁에 러시아군 대신 개입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민간인 학살 등 잔혹 행위로 악명이 높았지만, 프리고진은 이를 부인했다.
음지에서 활동하던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최근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프리고진은 성명을 내고 바그너그룹을 창설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 최대 격전지였던 동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의 공격을 주도했다. 서방 관계자들은 바그너그룹 용병 5만 명가량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됐고, 이 중 4만 명이 러시아 교도소로부터 모집된 죄수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 들어 프리고진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바그너그룹의 활약을 과시하고, 러시아 군부 인사들의 무능과 비협조적인 태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5월엔 군 수뇌부를 향해 ‘인간 말종’, ‘지옥에서 불탈 것’ 등 폭언을 쏟아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6월 10일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재계약을 거부했다. 오히려 6월 23일 무장반란을 일으켰고, 러시아 본토까지 진격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군부가 우리 캠프를 폭격했고, 많은 동지가 죽었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이 반란의 수위를 높이자, 푸틴 대통령은 “가혹한 대응을 할 것”이라며 이를 반역 행위로 규정했다.
무장반란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를 통해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철군하는 조건으로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36시간 만에 일단락됐다.
신변 보장 약속을 받아낸 프리고진은 무장반란 닷새 뒤 푸틴과 만나 면담했고, 7월 말에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이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푸틴이 결국 프리고진을 제거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푸틴이 정적과 배신자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공고히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러시아 국영 로시야1 방송은 경찰 특수부대가 프리고진 소유 사업체의 사무실과 저택을 급습하는 모습을 보도하면서 “프리고진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결국 프리고진은 당국의 수사와 재판을 통해 단죄받기 전에 목숨을 잃었고, 푸틴과의 굴곡진 인연도 끝맺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