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실공사와 비리 문제가 연달아 터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실이 어제 LH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LH아파트에서 발생한 하자 건수가 총 25만199건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8년 2561건, 2019년 1748건, 2020년 2337건, 2021년 11만5392건, 2022년 12만8161건이다. 하자가 2021년부터 급증한 것은 주택법 개정에 따라 중대하자뿐만 아니라 일반하자까지 추가 집계됐기 때문이다. 이를 참작해도 전반적으로 철근만이 부실한 게 아니라는 판단이 불가피하다.
하자 발생률 상위 10개 시공사 중에 시공능력평가 상위권인 현대건설(2위), 한화건설(11위), DL건설(12위) 등이 포함된 것도 충격적이다. 부실시공 문제가 인천 검단아파트 철근 누락으로 지하주차장이 붕괴돼 ‘순살자이’ 오명을 쓴 GS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LH는 지난해 기준 전체 분양 주택의 8.1%를 공급한 공기업이다. 그런 LH를 중심으로 부실·비리 파문이 번져서야 누가 안심하고 집을 장만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겠나. 혀를 차게 된다.
LH의 독점적 지위가 문제의 주범, 혹은 문제 해결을 막은 주요 요인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감사원 감사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LH 3급 이상 퇴직자 6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LH 계약업체에 재취업했다. LH가 이 기간에 이른바 ‘전관업체’에 몰아준 일감이 9조 원 규모를 웃돈다. 인천 검단 아파트 16개 단지의 설계·감리에 참여한 전관업체 18개사가 2020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3년간 수의계약으로 따낸 일감만 해도 총 77건, 2335억 원 규모에 달했다.
LH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체질 개선을 다짐했지만 모두 공염불에 그쳤다. 최근에도 대대적 조직 혁신을 하겠다며 임원 전원 사직서 제출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실제 사표가 수리된 상임이사 4명의 경우 임기가 종료됐거나 거의 끝난 것으로 밝혀져 외려 국민 분노의 불길에 부채질을 했다. LH는 앞서 2021년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불거졌을 때도 조직 해체 수준의 개혁을 공언했지만 역시 허언에 그쳤다.
LH는 이번에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 설치를 추진했다. 부실시공 설계·감리업체에 대해선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에게 계속 속아 넘어갈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LH는 강도 높은 ‘자기 수술’과 ‘외부 수술’을 동시에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례로 미루어 LH의 ‘자기 수술’에 기대를 거는 것은 허망하다. 주거 안정이란 공익에 보탬이 되려면 LH 스스로 수없이 공언한 ‘해체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외부 수술’이 불가피한 것이다. 정부는 공룡 조직의 분리 해체를 포함한 근본적 쇄신안을 마련해야 한다. 모름지기 LH 자체를 ‘재건축’하는 자세로 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