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내고 늦게 받는’ 연금 개혁, 비록 반길 순 없지만

입력 2023-09-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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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1일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한 보고서를 냈다. 공청회도 열었다. 보험료율 인상,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기금투자 수익률 제고 등 3가지 변수를 조합한 18개 시나리오가 열거됐다. 모두 ‘더 내고 더 늦게 그대로 받는’ 골자의 개혁안이다. 이를 기초로 새길을 찾으면 2055년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적립기금 소진을 2093년까지 미룰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용하 위원장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자문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위원회는 지난해부터 21차례 회의를 열었다. 전문가 집단이 그런 끝에 18개 시나리오를, 그것도 우선순위 없이 나열한 것은 여간 아쉽지 않다. 더욱이 공청회 직전 소득대체율 상향안이 빠졌다며 위원 2명이 사퇴해 연금 개혁 방향을 둘러싼 진영 갈등까지 드러냈다. 보고서와 공청회 분위기는 외려 연금 개혁이 그 얼마나 어려운지 웅변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와 국민은 위원회가 내놓은 18개 시나리오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세상에 다시 없는 우량한 제도라 하더라도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퇴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공적 연금을 도입한 서구의 많은 나라도 하나같이 연금의 지속가능성 때문에 국민 반발과 갈등 속에서도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개혁을 꾸준히 해온 것이다. 대한민국이라고 다른 뾰족한 타개수단이 있을 리 없다.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공적 연금 평균 보험료율은 18.3%다. 대한민국의 현행 요율(9%)보다 2배 이상 높다. OECD 국가들도 다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통을 감수하면서 그렇게 올렸다. 반갑고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였다.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그런 개혁을 장기간 미루다 결국 나라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을 받고 타율적으로 개혁에 나선 나라도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그런 길로 따라갈 수는 없다.

우리 국민 87%는 국민연금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수급 개시 연령 상향에 대해서는 절반인 50%만 찬성한다.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 대체율 인하엔 각각 27%와 23%만이 찬표를 던진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에 대한 최근 조사에선 찬성(48%)이 반대(45%)를 오차 범위에서 앞섰을 뿐이다. 원론적으론 개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합의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생쥐 세상에만 있는 과제가 아니다. 연금 개혁도 같은 종류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4가지 안을 제시해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샀다. 그런 회피를 계속할 국가적 여유가 더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10월 말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현 정부는 그러잖아도 3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연금을 보고 있다. 단호하게 임할 일이다. 제도 개혁의 핵심인 지속가능성을 직시하면서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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