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기후위기론,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23-09-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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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전문위원·언론학 박사

과학자 경고 갈수록 높아지지만
대중은 눈앞 위협으로 보지않아
규제보다 혁신·기술로 대응해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여름도 지나갔다. 신림역과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 우리 마음과 머리를 어지럽고 힘들게 한 사건들이 유난히 많은 여름이었다. 이런 충격적 사건 사고 가운데,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조용히 묻혀버린 외침이 있다. 지난 7월 27일, 안노티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선포했다. 유럽에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사망자가 6만 명을 넘은 시점이었다. 5월부터 시작된 캐나다의 산불이 남한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삼림을 휩쓸고 간 때이기도 했다.

우리는 해마다, 특히 폭염이 발생하는 여름에 ‘기후 위기’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오르면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이야기, 혹은 앞으로 30년 안에 부산이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기후 장사’라는 반론도 고려해야 하지만, 적어도 위기론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커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후 위기가 무서운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는 그 위협 정도는 강력 범죄, 화재와 같은 다른 위험 사건보다 낮다고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가 점점 듣는 이 없는 외침이 되어가는 이유이다. 대중이 환경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인지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렇지는 않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는 위험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기후 위기 역시 이같이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위험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익숙한 방식’이란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온 수렵채집 사회(인류의 역사는 280만여 년이고, 농경의 역사는 불과 1만여 년 정도라는 것을 기억하라) 때 형성되었다. 우리의 뇌는 미래에 다가올 위협보다 작은 위협이어도 당장 닥칠 위협을 우선시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이듬해에 일어날 가뭄보다 당장 나를 물 수 있는 눈앞의 너구리가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실상 너구리보다 이듬해의 가뭄으로 인해 나와 나의 가족이 사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영국 엑스터대학의 레이숀(Leyshon)은 장기적인 미래의 손해와 단기적인 미래의 이득이 상충했을 때, 인간은 전자를 인식적으로 배제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래의 위협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이 당장의 이익을 포기해야 대비할 수 있을 때, 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의 수렵채집 사회를 살아오면서, 인류는 자신의 목숨이 단 며칠, 혹은 몇 시간 사이에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기후위기가 우리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한들 당장의 생활상의 편의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발견은 다른 한편으로 언론을 비롯하여 기후 위기를 다루는 사회적 담론과 정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그동안은 언론을 비롯한 사회적 메시지와 정책은 대중의 공포감과 도덕에 호소해왔다. 위기의식과 윤리 의식을 자극하는 것을 바탕으로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 규제를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런 방법은 근본적인 ‘인지적 한계’가 있다. 인간은 시간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더 가까운 위협과 이득에 훨씬 더 잘 대응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위협은 통제가 어렵지만 ‘이득’은 담론과 정책을 통해 형성할 수 있다. 기후 위기 대책의 중심이 ‘공포’와 ‘규제’ 가 아닌 ‘혁신’과 ‘창조’로 탈바꿈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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