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신당역 그 후 1년…'나 홀로 근무'는 여전했다

입력 2023-09-13 14:57수정 2023-09-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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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직원 93% "2인 1조 순찰 불가능"
일터 안전 강화 ‘인력 충원’ 필수적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10번 출구 앞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김채빈 기자 chaebi@)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죠. 편히 쉬시길 바랄 뿐이에요.

13일 오후 1시께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만난 이윤희(34) 씨는 “근방에서 일하는데 점심시간에 잠깐 다녀간다”라며 “항상 다니던 장소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추모 공간 앞에는 1주기를 맞은 스토킹 살인사건을 기리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간간이 이어졌다.

지난해 9월 14일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A 씨가 입사 동기인 피의자 전주환에게 수년간 스토킹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사건은 전주환이 A 씨를 300여 차례 스토킹한 혐의로 징역 9년을 구형받은 뒤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벌어졌다.

이날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는 현수막 안에 글귀를 새길 수 있는 형태로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이곳에는 ‘안전한 세상, 안전한 지하철 만들어주세요’, ‘편히 쉬십시오’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공간 앞에는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애도 마음을 표현하는 하얀 국화꽃도 쌓여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신당역 내 여자 화장실 앞에는 추모 공간 위치 안내 현수막이 게시됐으며, 한 명의 역무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희옥(48·가명) 씨는 “제 딸도 또래인데 정말 안타까웠죠”라며 “1년 전보다 지하철 안전이나 스토킹 같은 범죄가 줄어들긴 했나 모르겠다”고 전했다.

‘10대 대책’ 수립했지만…역 직원 94% “나 홀로 근무 여전”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역 직원 10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역 직원의 93.55%가 '나 홀로 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제공=서울교통공사노조)

실제로 서울교통공사는 사건 발생 이후 ‘10대 대책’을 수립하며 재발 방지에 나섰지만, 일터 안전 강화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공사는 신당역 사건 이후 △직원이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 △지하철 이용 시민 불안요인 해소 △직원 보호 제도화 및 심리케어 강화 등 세 가지 방향으로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2인 1조 순회, 안전보호장비 지급, 지능형 폐쇄회로(CC)TV 추가설치, 직원 고충 수리 등이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1~8호선 역 직원 105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인 1조 순찰 시행 이후 안전 문제가 해소됐다고 생각하지를 묻는 물음에 93.55%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대다수 역 직원들이 신당역 사건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나 홀로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2인 1조 근무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 중복 발생’(63.41%), ‘조당 인원이 2인 이하여서’(44.73%) 등을 꼽았다.

특히 역 직원의 72.1%는 ‘역에서 일할 때 충분히 안전을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게다가 최근 지하철 2호선 내 흉기 난동 사건과 살인예고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역 직원들의 불안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직원들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취객, 소란자 등 불특정인으로부터의 위해에 대응하기 어렵다(804명)고 가장 많이 답했다. 이어 △공사의 과도한 고객서비스 응대 요구(505명), △비상상황 등에 혼자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362명) 순이었다.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았다.

결국 신당역 사건 같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실제로 현직 역무원들도 단독근무를 방지하는 인력 충원(864명)을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답했다. 이어 민원 갈등 유발하는 불필요한 업무 개선(536명), 역무원 및 보안관에게 사법권 부여(247명) 등의 순이었다.

다만 서울시와 공사 측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력감축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공사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인력 감축을 통해 재정 효율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시와 공사는 지난해 1539명의 인력 감축안을 제시했고, 올해도 2212명으로 인력 감축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정희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피해 노동자는 서울교통공사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혼자서 근무하다가 변을 당했다”라며 “그동안 노동조합에서 인력 충원을 지속해 요구했지만, 공사는 노사가 합의한 안전 인력조차 배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고통을 받는 동안 경찰에 가해자를 신고하고, 재판까지 진행하는 동안 정작 회사에 알리지 않은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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