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中제재로 韓기업 운신폭 좁아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메이트 60프로 5G 휴대폰에 탑재된 7나노칩을 두고 세계적으로 논쟁이 뜨겁다. 그로 인해 미·중 양국 간 반도체 신경전이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의 방중 기간에 맞춰 보란 듯이 7나노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탑재된 휴대폰이 출시되자 중국은 거의 축제 분위기다.
휴대폰이 출시되고 10분도 채 안돼 화웨이스토어·티몰·타오바오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매진되었고, 오프라인 화웨이 매장에서도 예약구매 신청을 해야만 구입이 가능한 상황이다. 중고 온라인 마켓에서는 얼리어답터나 빠른 구매를 원하는 애국 소비자들이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글들도 올라오고 있다.
도대체 미국 제재대상 블랙리스트에 오른 화웨이와 SMIC가 어떤 방식으로 7나노 반도체를 생산했을까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4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장비는 미국 허가 없이 중국과 거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과 시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크게 2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미국의 수출통제를 우회해서 비정상적인 경로인 암시장을 통해 조달했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제재 이전 구입한 DUV(심자외선) 장비를 통해 7나노를 구현했을 가능성이다.
팹리스 기업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기린 9000s AP를 SMIC가 기존 14나노급 DUV 노광장비를 통해 양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중국이 기존 DUV 장비의 패터닝기술을 활용해 불화아르곤(ArF) 제조방식으로 7나노 칩을 생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화아르곤 제조방식은 불화아르곤 광원에 물을 활용해 빛의 굴절을 만들어내는 액침 불화아르곤 방식으로 여러 번 나누어 웨이퍼에 노광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미국의 제재가 있기 전 2018년 화웨이 모바일 AP ‘기린980’의 반도체칩도 TSMC의 7나노 공정인 액침 불화아르곤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일반적으로 7나노 공정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혹은 불화아르곤 방식 중 하나로 구현되는데 반도체 제재로 EUV 장비를 도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화아르곤 방식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 7나노칩 공정에 진입했다는 소식은 3년 전부터 나온 애기다. 2020년 12월 SMIC가 미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 전인 10월 7나노 공정의 테이프아웃(반도체 설계회사에서 파운드리 회사로 설계도가 전달되는 과정)을 알린 바 있다.
주문형 반도체(ASIC) 회사인 중국 이노실리콘과 협력해 SMIC의 7나노(핀펫 N+1) 칩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노실리콘은 SMIC의 지난 14나노·12나노 공정개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중국의 대표적 맞춤형 반도체 전문기업이다.
작년에도 중국반도체 시장에서는 7나노칩이 시중에 돌아다닌다는 애기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말만 무성하다 이번 화웨이 7나노 스마트폰이 출시된 것이다.
지난 3년간 화웨이-SMIC-이노실리콘 간 긴밀한 협력과 중국정부의 적극적인 행정·재정적 지원으로 변형된 N+2의 7나노칩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지금의 기술로는 공정수율이 업계 표준인 90%에 못 미쳐 제조원가가 상승하고 출하량도 제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중국 반도체 기술은 지속적으로 진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은 화웨이의 7나노 신제품 출시에 충격에 휩싸인 모양새다. 마이클 매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SMIC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것이 확실하다”, 마이크 갤러거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장은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미국의 기술수출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대적 조사작업에 착수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 의회의 압박 속에 이미 상무부 기술평가국은 SMIC가 어떤 경로, 어떤 방식으로 7나노칩을 생산할 수 있었는지 전방위적 정밀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이와 동시에 2021년 9월 상무부 기술평가국이 글로벌 반도체공급망 조사차원에서 진행했던 이른바, ‘반도체 내무검사’를 다시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주문현황·재고현황·공정기술과 생산·고객정보 등 내부정보를 더 강력히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국방물자생산법’의 강력한 협박카드도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화웨이 7나노 폰을 해체해 분석한 결과 SK하이닉스의 스마트폰용 D램인 LPDDR5와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이전 구매한 메모리칩 재고를 사용했는지 불법 유통망을 통해 구매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우리기업에 미칠 타격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음 달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여한 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유예기간이 만료되고, 재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일어난 돌발악재인 셈이다.
중국 기술자립속도의 시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중국이 EUV 장비 없이 7나노 공정을 상용화했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기술축적과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엄청난 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스마트폰 내부 1만여 개의 부품을 지난 3년간의 노력으로 자국산으로 대체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2022년 기준 중국에 등록된 반도체 관련기업이 약 14만3000개이고, 그중 약 200여 개 기업이 상장되어 있다. 미국은 향후 그동안 제재 범위에서 제외시킨 레거시 범용반도체 규제도 강화하며 더욱 촘촘하고 강도 높은 대중제재 그물망을 다시 구축할 것이다.
그로 인해 미·중 반도체 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미국의 대중제재 확대와 중국의 기술자립이 가져올 변화에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와 함께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현재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