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협회 “준엄한 판결, 건보 급여화 시급” vs 의사협회 “보건위생상 위해 클 것”
최근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 뇌파계, 엑스레이(X-ray) 골밀도 측정기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무죄’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는 “현재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어내는 소중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대한의사협회는 “보건위생상 많은 위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14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내용을 인용해 해당 한의사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2010~2012년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는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80만 원을 부과했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 수단으로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 의료법 위반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다”며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해당 여부에 관해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도 대법원의 파기 환송 취지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활용해 한의학적으로 진단을 내렸기 때문에 한의학적 기본원리를 기반으로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의협은 이번 선고에 대해 “국민건강을 위한 정의롭고 합리적인 판결이 재확인됐다”며 “국민의 진료 선택권 확대와 진료 편의성 제고를 위해 건강보험 급여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의협은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한의사에게 굳게 채워져 있던 현대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어내는 소중한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에 따라 관계 당국은 국민의 건강증진과 편익을 위해 법적·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달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뇌파계는 원판이나 침을 두피에 고정하고 전기 신호를 측정해 뇌파를 기록하는 장치다. 재판부는 한의사가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가 ‘면허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다고 봤다.
이달에는 저선량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의사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뇌파계, 초음파 등 최근 한의계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에 대해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잇따르고 있다.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한의사가 현대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무죄’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파기환송심이 열리기 전인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초음파 진단기기로 정확한 진단을 할 능력이 없는 이에게 초음파 기기를 허용한다면, 오진으로 인해 환자는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질병이 악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보건위생상 위해가 크지 않다고 대법원이 판단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의 경제적인 손실까지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암을 한의 치료를 받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이번 판결로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로 진단할 수 있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의료법에서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또 김 대변인은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로 진단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달라. 진단기기가 보여주는 그림이나 검사 결과를 읽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적정하게 진단할 수 있느냐는 엄격하게 봐야 한다. 한의사가 현대의학에 나오는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과장이고 왜곡”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