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21일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이자 ‘치매 극복의 날’
치매는 기억력을 비롯해 지적 능력의 감퇴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일으키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고령화로 치매 환자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2’ 보고서에 의하면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2017년 약 71만명에서 2021년 89만명으로 매년 5만 명 가량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약 93만5086명, 올해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에 달하는 수치다. ‘고령사회의 적’이라고 불리는 치매 중에서도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50% 이상을 차지한다. 매년 9월 21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가 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World Alzheimer’s Day)’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치매 극복을 위한 ‘치매극복의 날’로 지정됐다.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우리나라 치매의 50~60%는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하는 신경 퇴행성 치매다. 다음으로 중풍·뇌졸중 등 뇌의 혈액 순환 장애에 의해 생기는 혈관성 치매가 20~30%, 나머지 10~30%는 기타 원인에 의한 치매라고 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서서히 뇌에 쌓이면서 뇌세포 간의 연결고리를 끊고 뇌세포를 파괴해 치매 증상을 발생시키게 된다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호발 연령은 65세 이후에서 가장 흔하며, 매우 서서히 발병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과가 특징적이다. 임재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주된 증상으로는 기억 장애, 지남력(指南力: 오늘 날짜, 현재 시각, 본인이 있는 장소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장애, 주의력 장애, 언어 장애, 시공간 파악 기능 장애, 전두엽 수행능력 장애 등과 같은 신경인지기능 이상이 있다”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 시에는 환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보호자가 환자의 증상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 비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언제부터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확인하고 정확한 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검사는 어떤 인지영역에 얼마만큼의 이상 소견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인지기능검사와 어떤 원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혈액검사와 뇌영상검사 등이 시행된다.
치매안심센터나 병원 초진 진료 시 시행하는 10~15분 가량의 인지검사는 환자의 인지기능 수준을 간략하게 파악하는 선별검사다. 여기서 문제가 파악될 경우 정확한 진단을 위해 1~2시간이 소요되는 종합인지기능검사를 받게 된다. 치매가 아니더라도 기억력 저하가 분명한 경우에는 6개월~1년 간격을 두고 인지기능검사를 받아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합인지기능검사에서 치매 또는 치매 전조단계인 경도인지장애로 확인될 경우 어느 원인에 기인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혈액검사와 뇌영상검사를 받게 된다. MRI만으로는 치매를 진단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인지기능검사를 통한 인지평가가 선행돼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현재 치매 치료의 근간은 중증화를 막는 것이다. 병을 없앨 수는 없지만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시작하면 중증 치매로 악화되는 것을 막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시기를 연장할 수 있다. 약물치료가 주된 방법이지만 그 외에도 고혈압, 당뇨병, 흡연, 심장질환 등 위험인자를 잘 조절하는 것이 인지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꼭 필요한 관절과 근육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운동치료,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해 현재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현실인식훈련, 기억력, 집중력, 시공간능력 등 저하된 인지기능을 훈련하는 인지훈련 등의 비약물치료도 병행하면 치매환자의 현재의 기능을 극대화하고 최대한 오래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직 효과를 인정받은 치료 약물은 매우 적다. 현재까지 다섯 가지 성분만 인정받았고 그중 네 종류의 약물이 이용되고 있다. 병으로 인해 저하된 시냅스 간극의 아세틸콜린 농도를 증가시켜 환자의 인지기능을 향상하는 ‘아세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가 대표적이다. 이외에 NMDA 수용체를 억제함으로써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학습 및 기억력을 증진하는 ‘NMDA 수용길항체’도 사용된다. 또 행동정신증상 완화를 위해서도 약물이 사용되기도 한다.
2021년, 약 18년 만에 개발된 신약 ‘아두카누맙’이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치료 약물의 하나로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조건부 승인받았다. 하지만 그 효과를 완벽히 입증하지는 못하여 국내에는 도입되지 못한 실정이다. 작년과 올해 뇌 안의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새로운 약물인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이 각각 3상 임상 연구를 통해 치료 효과를 입증하였고, 수년 내에 국내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40대, 심지어는 그 이전부터 치매의 과정이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청소년기부터 각 시기에 적절한 위험인자 관리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치매를 절반 가까이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우선 청소년기에 충분한 교육을 받은 환자들이 그렇지 못한 환자들보다 치매 위험성이 낮았다. 40~50대의 중년기로 접어들 때는 머리 외상을 조심하고 고혈압, 과음, 비만을 조절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발병률이 높은 노년기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나 우울증을 피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 및 스트레칭, 근력 운동 또한 뇌를 보호하는 물질을 분비하게 함으로써 치매 관리에 도움이 된다. 매일 30분씩, 주 5회 가량을 꾸준히 걷고 운동할 경우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음식은 통곡물, 녹황색 야채, 견과류, 가금류를 통한 적절한 단백질 섭취, 등 푸른 생선 섭취를 권장하며 붉은 고기, 고지방 치즈, 빵, 설탕, 과자, 패스트푸드 등은 제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임재성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억력이 떨어지는 폭이 매일매일 심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면 치매를 의심하고 조기에 병원을 찾아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정상적으로도 나이가 들면 깜빡하는 증상이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정상적인 노화에 의한 뇌 기능 저하는 치매에 의한 뇌 기능 저하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학영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기억장애가 정상적인 노화에 의한 것인지, 병에 의한 것인지 구분해야 하는데, 6개월 이상 악화하는 기억장애의 경우에는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상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또한 치매에 따라 기억력이나 판단력의 장애 외에도 움직임의 이상이 나타나기도 하므로 움직임의 이상 등의 다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진단에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교수는 “어떤 경우 치매에 덜 걸리는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며 “해외 유명 의학저널에서도 치매를 예방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권고안이 발표된 것처럼 건강한 뇌를 만드는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움말=임재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이학영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