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경 사회경제부 차장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내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대법원장 궐위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마저 나온다.
이렇게 보는 데는 나름 근거가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처리 시기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꼽힌다. 현재 정기국회에서 예정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이다. 여·야 협상을 통해 10월에 추가 본회의 일정을 잡지 않으면 최소 한 달 넘게 대법원장 공백이 불가피하다.
다음 달 3일까지 추석연휴가 길게 이어지는 데다 9일 한글날을 낀 연휴가 또 있다. 곧바로 10일부터 27일까지는 국정감사가 잡혀 있어 10월 본회의 개최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말 전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국회 통과는 미지수다. 167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이균용 대법원장 취임 뒤 예견되는 사법부의 보수화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 성향의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이달 24일 끝남에 따라 법원조직법에 의거, 25일부터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66·연수원 15기)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 안 대법관과 ‘선임 대법관 순위 2번’ 민유숙(58·18기) 대법관 임기는 내년 1월 1일까지다.
민주당이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키면 윤석열 대통령은 새 대법원장 후보를 다시 찾아야 한다. 올해 말까지 시간을 끌게 되는데, 이러면 새해 연초부터 ‘선임 대법관 3순위’ 김선수(62·17기)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 대행자가 된다.
김 대법관은 전북 진안군 출생으로 법무법인 시민 대표 변호사를 지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사무총장을 거쳐 민변 회장을 역임했다. 임기는 내년 7월 초까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대법관 중에서 겸직하므로 김선수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 아래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민주당에게 유리하다는 정략적 셈법이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법원 내부조차 대법원장직 공석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대법원장 궐위 첫날인 25일 안철상 선임 대법관이 의장 권한을 대신해 대법관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포함해 대법원장 권한에 대한 권한 대행자의 대행 범위 등이 논의됐다.
앞선 문재인 정부 시절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난 김이수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에 관한 임명 동의안은 2017년 9월 당시 제1 야당이자 현(現) 여당인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 주도로 부결됐다. 문 전 대통령이 국회에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요청한지 110일 만에 가까스로 본회의가 열렸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헌재는 권한대행 체제로 2017년 2월 1일부터 11월 23일까지 무려 열 달 가까이 버텼다.
“지금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대가 아니라 ‘네 편’과 ‘내 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한 법조계 인사 말처럼 공수가 뒤바뀐 여·야 간 사생결단 싸움에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갯속 앞날이 너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