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에 '송편·나물·구이·김치·과일·술'만 올려도
지난 17일 롯데멤버스가 20~50대 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응답자(56.4%)가 지낸다는 응답자(43.7%)보다 더 많았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 4차 가족실태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응답자 중 20대는 63.5%, 30대는 54.9%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렇듯 차례를 지내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시대가 바뀌면서 전통과 관습에 덜 얽매이는 분위기가 퍼진 것이 꼽힌다.
지난해 9월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의례정립위원회)의 표준 차례상 발표에서도 이 같은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의례정립위원회는 “그동안 추석과 설날의 차례상은 가정에서 지내던 제사상 차림을 기준으로 해오다보니 적잖은 부담과 논란이 있었다”며 “부담스러운 차례상 준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례정립위원회가 함께 밝힌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복잡한 관습에 얽매이는 차례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차례를 지낼 때 가장 개선해야 할 점으로 10명 중 4명(40.7%)이 ‘간소화’를 뽑았다. 그 다음으로 ‘정성’(19.1%)과 ‘남녀 공동참여’(19%)가 뒤를 이었다. ‘간소화’와 ‘남녀 공동참여’ 등 키워드는 차례상 문화도 시대 변화에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차례상 간소화에 대한 목소리는 유학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禮)를 다룬 유학 경전 예기의 악기에는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는 뜻의 ‘대례필간’이 쓰여 있다. 의례를 너무 화려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다.
조선 성리학자 퇴계 이황 선생은 ‘만들기 번거롭고 비싼 음식’을 뜻하는 ‘유밀과’를 차례상에 올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고, 조선 중기 학자 명재 윤증 선생도 기름으로 조리한 전을 올리지 말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의례정립위원회는 “예법을 다룬 문헌에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라는 표현은 없다”며 “(과일 등은)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는 붉은 과일을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는 것을 뜻한다. 조율이시는 대추·밤·배·감 순으로 놓는 것을 지칭한다.
이어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며 “전 부치느라 고생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도 된다”고 말했다.
의례정립위원회가 진행한 동 조사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읽을 수 있다.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은 몇 가지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9.8%는 5~10개가 적당하다고 답했다.
의례정립위원회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차례상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들 중에는 여성(43.7%)이 남성(37.6%)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대 응답자는 차례를 지낼 때 가장 개선해야 할 점으로 ‘남녀가 공동 참여해야 한다’(35.0%)를 꼽았다.
의례정립위원회 관계자는 “좋은 예법은 반드시 쉽고 간단하다고 했다”며 “(차례상에) 많이 놓지도, 복잡하게 꾸미려고도 하지 마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