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
"행복이요? 음….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일해요."
인터뷰 중 대뜸 던진 '지금 행복한가'라는 물음. 류호정 정의당 의원(31)은 몇 초간 생각 끝에 아리송한 답변을 내놨다. 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아 21대 국회 최연소로 금배지를 단 류 의원은 요즘 고민이 많다. 어느새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는데, 여야 이견이 큰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비동의강간죄·타투업법 등 관심 법안의 입법 가능성이 낮아서다.
류 의원은 추석 연휴를 앞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21대 국회는 여야 갈등 끝에 하나의 합의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시민만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잃는 게 아니라, 시민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온 의원도 허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는 내일 따윈 없는 듯 싸우고만 있는데, 그래도 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며 "물밑에서라도 일하면 좋을 텐데, 중요한 문제일수록 대화가 안 돼 풀리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마냥 허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류 의원은 "한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특별근로감독을 한 적이 있다"며 "체불임금 문제 등을 해결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통과되지 않은 타투업법도 십수 년간 노력해도 공론화를 하지 못했었는데, '그 기자회견'으로 많은 시민이 알게 됐다. 그때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과반 찬성이 나왔다. 타투업법 입법에 영향을 줄 것 같다 기뻤다"고 말했다. 앞서 류 의원은 2021년 6월 타투업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등을 드러낸 보라색 원피스를 입는 퍼포먼스로 정치권 안팎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진영정치 중재할 실력 갖춰야 제3, 4 교섭단체 가능"
이화여대(사회학)를 졸업하고 게임업계에 몸담은 그를 정치로 이끈 것은 분당 판교 테크노밸리의 IT업계 노조 설립 바람이 단초였다.
업계 내 고용불안·장시간 노동 등을 고민하던 2018년 어느 날, '26세 류호정'은 네이버 노조 설립 소식을 듣고 정의당의 문을 두드렸다. 류 의원은 "선배들은 어딜 가도 똑같다고 했다. 이직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며 "노조를 만들어 함께 업계를 바꿔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회사에 노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류 의원은 "지금은 그 회사에 다니지 않지만, 근로자들이 노조의 보호를 받으면서 부당한 상황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차다"고 말했다.
같은 해 게임업계를 떠난 뒤 민주노총 화섬노조 선전홍보부장을 맡았고, 정의당에도 입당했다. 당 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경기도당 여성위원장을 거쳐 제21대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지금 정의당은 거센 풍파 속에 있다. 지난해 대선(득표율 2.37%)·지방선거(당선자 9명) 결과는 처참했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는 했지만 당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도 상당한 고전이 예상되고 있다.
결국 류 의원의 시선은 제3지대 신당에 이르렀다.
류 의원은 현 정의당에 대해 "의석수는 적어도 명실상부한 진보정당, 3당의 지위는 확실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민들이 그 자격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만회하지 못했다. 이정미 지도부가 출범했지만, 아직 성과는 고사하고 시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우리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내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양당에 대해선 "지난 3년간 최악을 막기에 급급했다. 싸움만 있고 결과물은 없었다. 양당이 민생을 외치지만, 정말 관심이 있나 싶었다. 이번 총선도 서로의 견고한 30%만으로 치르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진영 정치의 중재자로서 부여한 권력을 선용할 실력이 있다면 여전히 제3, 4 교섭단체는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괜찮은 제3지대라면 시민께서 기회를 줄 의향이 있다고 본다"며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지가 관건이다. 지금 정치는 꽉 막혀 있는데, 어떻게 (제3지대가) 살아서 장까지 가는 유산균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주요 고민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적 약자 위한 당이 집권여당 되는 사회 꿈꾼다"
이런 고민의 연장선으로 류 의원은 장혜영 의원, 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장 등과 정치유니온 '세번째권력'을 결성했다. 하지만 정의당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며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지만 좋은 정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을 떠나는 것인가'라는 질문엔 "정의당은 어느 쪽으로든 변화를 앞두고 있다. 같이 변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당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류 의원은 "정당명이 바뀔 수는 있지만, '집권여당 정의당'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하고, 비정규직 등 더 많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하는 당이 집권여당이 되는 사회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며 "제3지대는 정의당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의당 없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당은 이 분야 최고 경력자"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의당에서 오래 일한 선배들은 20년 이상 해왔는데 교섭단체를 만들지 못했다고 허탈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몇 년 안 됐다. 앞으로 20년, 다시 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은 이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극단 정치 심화 요인으로는 ▲모든 행정부가 대통령 입만 보는 제왕적 대통령제 ▲상대가 똥볼을 차면 집권하고, 집권 못해도 제1야당이 되는 승자 독식 선거제도 ▲공천받으려면 당이 상식과 멀어져도 눈 감는 정당 문화 등 3가지를 꼽았다. 이는 지난 6일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의 동의를 이끌어낸 주장이기도 하다.
그는 "양당이 싸우면 나라가 두 쪽이 난다. 무책임한 것"이라며 "평범한 시민이 양극단 정치의 피해자다. 그런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번째권력'에 대해선 "새 정당의 비전, 새롭고 신기한 조합을 만들기 위해 늘 분주하게 뛰고 있다"며 "세번째권력의 생각이 더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아 정의당이 변화 기로에 있을 때 그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범야권 본회의 처리→대통령 거부권 수순이 유력한 쟁점법안 노란봉투법에 대해선 "폐기만은 막고 싶다"며 "정부여당이 안 된다고만 하면 논의에 진전이 없다. 반대로 법을 지지하는 단체라 해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어떻게든 통과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 폐기가 가능한 정부여당을 상대로 논의 진전을 위해선 진보진영의 전향적 양보도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어 "정의당 원안에서 점점 후퇴할수록 아쉬움은 크지만, 이대로 공중분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죽음으로 쌓아올린 법안"이라며 "어떻게든 진전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권력없는 사람 곁에 있던 정치인으로 남고 싶다"
이번 연휴에는 해양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태국·베트남을 찾아 현지 정치인들과 해법을 논의할 계획이다. 류 의원은 "여야 청년 정치인들과 국내외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줍줍 지구세탁실'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며 "최근 영종도에서 플로깅을 했고, 녹색기술센터·자원순환센터 등 국내 기관도 방문했다. 오늘(26일)은 국회에서 기후환경 스타트업 간담회도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가 협치도 안 되고 쓸모도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작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마치면 결과물을 책자로 낼 계획이다.
내년 총선에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분당갑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류 의원은 "창원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분당에서 취업했다. 말하자면 분당에 뿌리를 내린 지방 시민이다. 내년 총선 즈음이면 10년 가까이 살게 된다"며 "주변에서 청년이나 당적을 고려해 지역구 선택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지만, 지역구 의원이라면 본인이 골목골목 잘 알고 사랑하는 도시에 출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시민들에게도 신뢰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선에서 안 의원과 맞붙는 것을 전제하면 'IT업계 사용자 출신 중년 남성'과 'IT업계 노동자 출신 청년 여성'의 대결이고, '제3지대 문을 열고자 했지만 끝내 양당에 굴복한 분'과, '제3지대의 새 물결을 열려고 도전하는 자'와의 싸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막바지, 정치하는 이유와 목표를 물었다.
류 의원은 "권력이 없는 사람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었던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마지막 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어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며 "타투 퍼포먼스나 국정감사장에서 김용균 노동자 옷을 입었던 것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의원실을 찾은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 10월 국정감사에서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