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와 관련해 건설사 관계자가 한 달 여전에 한 예언이다. 올해 국감에 건설업계 최고경영진이 출석하게 될 것 같으냔 물음에 이렇게 단언했다.
그의 예상처럼 둘 이상의 건설사 CEO가 이번 국감 증언대에 선다. 임병용 GS건설 부회장은 국토교통위원회, 마창민 DL이앤씨 대표이사는 환경노동위원회, 박철희 호반건설 대표는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에 출석하게 됐다.
임 부회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마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지속된 사망사고, 박 대표는 '벌떼 입찰'과 관련한 질의를 받을 전망이다.
건설업계 CEO들의 국감 호출은 사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단지 누구냐의 문제일 뿐 기업인의 국감 출석은 기정사실이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특히 GS건설이나 DL이앤씨처럼 사건·사고가 있는 기업의 경영자가 국감에 나오는 것은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기업인의 국감 출석은 매년 반복되는 익숙한 일이지만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단순히 국감에 부처가 아닌 민간기업의 경영자를 출석시키는 게 맞느냐의 문제를 떠나 긍정적인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우선, 인천 검단 아파트 국감 질의는 사고 경위에 대한 설명과 재발 방지 대책 요구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질책을 쏟아내고 임 부회장은 사과와 함께 성실한 답변을 하겠지만 여기서 얻을 것은 없다. 앞선 수개월 간 셀 수 없이 많이 전해진 사실을 서로의 질의응답으로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인천 검단 아파트 사고조사 결과를 발표한 게 이미 석 달 전이고 GS건설이 시공 중인 나머지 83개 현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감을 통해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에 숨겨진 다른 원인이 있다거나 GS건설의 현장에서 또다시 붕괴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새로 제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DL이앤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질책을 하고 마 대표는 사과와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할 것이다. 이외에는 나올 게 없다. 호반건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국감장에서 의원은 호통치고 기업인은 고개 숙이며 반성하고 다짐하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뿐이란 얘기다.
이런 모습이 연출된 뒤 의원들과 의원실 관계자들은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했다"며 자화자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업은 상처만 남는다. 기업은 생중계되는 국감 준비를 위해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단지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최선의 대안을 내놓는 것을 넘어 혹시나 오해가 생길 표현은 없는지까지 신경 써야 하니 들여야 할 공력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사건·사고가 상기돼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의원들이 위한다는 '국민'도 얻을 게 없다. 기업이 소비자나 노동자를 위해 써야 할 시간과 자원을 국감으로 소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손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수 있다. 국감 준비보다는 사고 아파트 예비 입주자와 '윈윈'할 방법, 부실공사 또는 하자를 근절할 방안, 중대재해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대책에 골몰하는 게 여러모로 더 쓸모 있다.
사건·사고나 사회적 문제를 기업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듯한 모양새를 만드는 것도 부적절하다. 붕괴사고와 사망사고, 벌떼 입찰 모두 해당 기업만의 실수나 부정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법·제도의 미비나 그릇된 관행 또는 사회적 인식, 관련 부처의 부실한 관리·감독 등에도 그 원인이 있다.
국회가 기업인을 불러 국감장에 온종일 앉아있게 하고 큰소리로 다그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맞서 싸울 힘이 부족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윽박지르는 것은 가혹 행위일 뿐이다.
국회의 일은 기업인을 망신주고 기업의 자원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법·제도의 문제점은 없는지, 부처가 본분을 다하고 있는지 살피고 고쳐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