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숙씨의 양육비 청구 사건 심문기일
“어쩜 아빠란 사람이 애 양육비를 단 한 번도 주지를 않았습니다. 애는 거저 키우는 줄 아는지, 학원비도 만만찮고 아이한테 들어가는 돈이 많은데 혼자서 정말 너무 힘이 듭니다.”
“양육비를 못 받은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이혼한 지가 1년이 다 되어 가니까 1년쯤 됐죠. 어떻게 아빠가 되가지고 1년 동안 애 양육비 한 번을 안 줄 수가 있을까요.”
“혹시 아이와 아빠 사이에 면접교섭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면접교섭이요? 그런 것도 안합니다.”
“그럼 아예 연락이 안 오나요?”
“몇 번 애 보여 달라고 연락이 오긴 했는데 통장에 양육비 먼저 넣고 나서 전화하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애 볼 자격도 없습니다.”
# 상철씨의 면접교섭 청구 사건 심문기일
“협의이혼 할 때 매주 일요일에 면접교섭을 시켜주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애를 안 보여 줍니다. 얼마 전엔 아예 제 전화를 차단해 놓은 거 같더라고요.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걱정도 많이 됩니다.”
“아이를 마지막 만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지난 설날에 보고 그 후로 쭉 못 봤어요. 한 9개월쯤 되었나 봐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양육권을 아예 찾아오고 싶어요.”
“혹시 양육비는 계속 주고 계신가요?”
“아니 애도 못 보게 하는데 양육비는 왜 줍니까.”
“그럼 양육비는 언제부터 안 주고 계신가요?”
“이혼하고 처음에는 힘들어도 양육비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너무 힘들어져서 계속 보낼 수가 없어요.”
“그러면 면접교섭을 못 해서 양육비를 안 보내시는 것은 아니시네요?”
“아니 근데 왜 양육비 얘기를 자꾸 하는 겁니까. 편파적으로 양육비 얘기로 돌리지 말고 제가 청구한 면접교섭 결정이나 빨리 해 주십시오.”
위 이야기들은 양육비와 면접교섭 사건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입니다. 이혼 후 양육비 사건은 양육비를 청구하는 사건뿐만 아니라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를 청구하는 사건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면접교섭 역시 면접교섭 청구 사건뿐만 아니라, 이행명령, 과태료 청구 사건들이 있습니다.
기우일 수도 있으나 혹시 오해를 하시지 않도록, 위 이야기들을 보실 때에 주의할 점부터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숙씨가 양육비를 못 받는다고 면접교섭에 불응하는 것은 절대 정당하지 않다는 것과 한편으로 영숙씨가 면접교섭에 불응하기 때문에 양육비를 못 받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절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철씨가 말한, 면접교섭을 안 시켜주니 양육비를 안 주겠다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처사이고 다른 한편, 상철씨가 양육비를 안 주었으니 면접교섭을 거부당한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 역시 절대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양육비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면접교섭을 거부해서는 안 되고 면접교섭을 거부당했다고 해서 양육비 지급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양육비와 면접교섭은 이혼한 부와 모가 서로 상대방에 대해 내주거나 받는 딜이나 무슨 무기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녀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나 모는 자녀의 양육에 대해 의무만 있을 뿐 권리가 없습니다. 양육은 의무이지 권리가 아니고 기껏해야 지위나 권한에 유사한 법적 지위일 뿐입니다.
비양육친이 양육친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는 것은 자녀의 복리(福利)를 위한 자녀의 권리이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아동권리협약 제27조). 자녀가 비동거친과 접촉하고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유지할 권리 역시 우리 민법과 아동권리협약상 자녀의 권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의무자인 부와 모가 권리자인 자녀의 권리를 가지고 상대방과 싸우거나 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즉 양육비 안 준다고 면접교섭에 협력하지 않거나 면접교섭을 거부한다고 양육비를 안 주어서도 안 되고, 서로 보기 싫다고 서로 양육비 안 주고 면접교섭 안 하기로 딜 따위를 해서도 안 되며, 그럴 수 있는 권리 같은 것 자체가 부모에게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점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혹시 위의 두 이야기를 읽으며 오해를 하실 분들이 계실까 하여 먼저 강조해 드렸고, 이제 위 두 이야기를 언급한 진짜 중요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데 못 받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나 상대방으로부터 면접교섭 협력을 받아야 하는데 못 받아서 아이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괴로움을 겪는 부모 입장에서 봅니다. 우선 상대나 나에 대한 비난이나 응징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잠깐 밀쳐 두고, 순전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 현명하게 양육비를 잘 받을 수 있나, 또는 면접교섭의 협력을 잘 받을 수 있나’ 하는 방안을 찾는 관점에 서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흔히들, 그리고 실제로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도 대체로는, 양육비 또는 면접교섭에 관해 상담을 받으면, 제가 위에 언급해 드린 법적 제도에 대한 안내를 받고 그 절차에 들어가곤 합니다. 즉 양육비는 못 받으면 심판 청구를 하면 된다. 양육비 심판을 받고도 이행을 못 받으면 그 다음에는 이행명령, 그 다음에는 과태료, 그래도 못 받으면 감치를 청구하면 된다. 면접교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심판 청구, 이행명령, 과태료, 이런 순으로 조치를 하면 된다.
과연 그럴까요? 숱한 양육비, 면접교섭의 심판 청구와 이행명령, 과태료, 감치 사건을 처리해 본 판사로서 말씀드리자면, “되긴 뭐가 됩니까?”라고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사건들을 담당하며 처리하는 판사이기 때문에 그러한 제도들의 실효성 또한 직접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즉 양육비와 면접교섭은 부모가 자녀를 생각하고 돌보고 사랑하려 하면 너무도 쉽게 저절로 되는 것이지만, 그 ‘관계’가 깨어질 때는 아무리 심판문이 있고 강제조치 수단이 있어도 그것으로는 이행이 안 되고 설령 잘 해 보려고 해도 너무나 어려운 것들이더군요. 양육비 심판문을 아무리 받아도 상대는 통장에 돈을 넣지 않고, 결국 강제집행을 해야 하는데 그 역시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으며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거나 찾기 어려운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면접교섭은 그 자체가 ‘강제적’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강제로 만나게 하며 강제로 만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냔 말이지요.
자, 그러하기 때문에 앞서 영숙씨와 상철씨의 예를 보여드린 것인데요. 양육비 사건의 경우 심리해 보면 많은 경우 면접교섭도 중단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고, 면접교섭 사건의 경우도 심리해 보면 대부분 양육비 지급이 안 되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니 봐라 면접교섭 안 시켜 주니까 양육비 안 주겠다’ 또는 ‘양육비 안 주니 면접교섭 거부 하겠다’로 가서도 안 되고 상대 비난이나 자기 비난도 다 부질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양육비 지급률을 높이려면 면접교섭도 살펴야 하고 면접교섭이 원만해 지게 하려면 양육비 지급을 살펴야 한다는 것’ 여기에만 유의해서 포커스를 맞추어 봅시다. 양육비 지급을 안 하는 상대 부모에게는 더욱 적극적으로 아이와 만나게 하고 시간을 보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면접교섭을 거부하는 상대 부모에게는 더욱 성실하게 양육비를 챙겨서 보내려 애써야 할 것이고요.
좀 더 풀어 말씀드리면, 비동거친이 자녀와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아이의 생활과 필요를 잘 알게 되고 경제적 소요나 어려움도 잘 알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에게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부모의 사랑을 샘솟게도 하고 부모의 사랑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연스레 그 지갑도 자녀를 위해 자주 열게 되는 것이고요.
실제로 한부모가족실태조사를 통해서 정기적인 면접교섭 비율이 높을수록 양육비 지급률과 지급 금액이 높다는 점을 밝힌 연구도 있습니다(박복순, 2021). 그리고 이혼 후 정기적인 면접교섭, 또는 비정기적일지라도 꾸준히 면접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대부분 양육비 지급이 제대로 또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4년에 제정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이러한 면접교섭과의 관계를 미처 알지 못했고 단지 이행확보조치로써 재산조회, 직접지급명령, 담보제공명령, 이행명령, 압류·추심·전부명령 그리고 감치에 대해서만 규정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산적·강제적 조치들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들, 그리고 양육비는 일반적인 재산관계의 채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녀와 부모 간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비양육친과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면 양육비도 끊기고 관계가 이어져 있으면 저절로 양육비 지원이 계속되는 속성이 있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생기면서 ‘면접교섭’에 관한 조항이 위 법에 들어갔습니다.
즉 2018년 개정으로, 양육비 이행을 지원하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업무에 ‘면접교섭 지원’을 추가하였습니다. 실제로 양육비이행관리원은 2017년부터 면접교섭 지원 업무를 실시하여 매년 면접교섭지원서비스 참여자가 늘고 있는데, 그와 연동하여 양육비 이행률도 높아지고 있고 특히 면접교섭 참여자의 양육비 이행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2020. 1. 29.자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양육비와 면접교섭은 결국 부모의 자녀에 대한 양육비용은 분담과 양육시간의 분배입니다. 이혼은 부부 관계만 끝낼 뿐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이혼 후에도 계속되는 것이고, 이혼 후에도 사랑하는 자녀의 또 다른 한 명의 부모와의, 양육에 있어 협력해야 할 파트너 관계로서 변화되어 지속됩니다. 이러한 ‘부모 간의 양육 협력 관계’ 또는 ‘따로 사는 양쪽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전자) 관계 악화 또는 단절되게 되는 경우(후자), 그 결과물로서 양육비 지급이 안 되고 면접교섭 이행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양육비와 면접교섭은 그 각각을 강제이행하려는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 되고, 우선 근본적으로 이혼 부모 간의 양육 협력 관계를 재구축하고 비동거친과 자녀 간의 관계를 회복해서 그 결과물로서 자연스레 양육비용의 분담과 양육시간의 분배가 이루어지게 해야 하며, 양육비 부지급과 면접교섭 불이행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그 둘의 기능적 선순환 관계를 형성·유지함이 꼭 필요합니다.
이혼을 하면서 많은 부모님들이 이 어려운 과제들을 잘 수행해 내고 계신 것을 압니다. 아직은 적응이 안 되고 미숙하여 이 과제를 힘겹게 이루어가고 계신 부모님들도 오직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은 조만간 잘 해내게 되실 것으로 믿고요. 이혼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와 생활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고자 애쓰는 수많은 부모님들과 그 자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현재 수원지방·가정법원 안산지원에 재직 중이며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면접교섭의 중요성 및 바람직한 방법을 안내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