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일단 해놓기는 했는데 사고 터지면 또 모르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약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조치를 9가지로 규정한 시행령 4조에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다.
예컨대 시행령은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ㆍ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을 설정할 것’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법에서 정한 대로 경영방침을 세웠다고 볼 수 있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항목들도 ‘기준ㆍ절차를 마련하라’고 돼 있지만,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장에서는 ‘이 정도면 됐나?’ 하는 의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상담을 받는 대형로펌들도 의뢰 기업에 '충분하다'고 평가해주기 어려운 현실이다.
최근에야 경영방침에 대한 법원 판단은 엿볼 수 있었다. 사업과 사업장 특성, 규모 등을 반영하지 않고, 업계에서 통용되는 표준 양식을 수정해 사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책을 다시 세우고 있는 기업들도 수두룩할 것으로 보인다.
법 적용을 세 달여 앞둔 50인 미만 기업들은 더 큰 혼란을 맞이하고 있다. 시작도 못 한 곳이 많고, 나름대로 준비를 한 곳도 확신은 없다. 대기업도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확언을 듣기 어려운데, 자금 규모ㆍ인력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소기업들은 9가지 의무사항에 대해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정도다.
일부는 “준비를 한다고 사고 나면 처벌을 피하겠느냐”며 대책 마련을 시작부터 포기하기도 한다. 인력과 비용을 짜내더라도 완벽한 준비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벽을 마주한 결과다.
지금이라도 의무이행의 ‘정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구체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50인 미만 기업 등의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기준이 세워질 필요도 있다. 소기업이 각자 사업과 사업장 규모 등에 맞춘 경영방침을 스스로 세우기는 어렵다. 결국, 컨설팅 업체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비용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안전’을 외면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현실적으로 준비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