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장관 "학생 인건비 지장 없도록 해결"
출연연 재원 인건비 활용, '쌈짓돈' 대책 비판
국감, 내년 R&D 예산 국회 복원 가능성 열어
“오늘 예산 조정내역 통보를 받고 처음으로 박사 받은 걸 후회했다. 사실상 과제가 없어지게 되니 허탈하다. 나는 필요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생각도 든다.”
11일 이공계 네트워크 커뮤니티에는 ‘처음으로 박사 받은 게 후회되네요’라는 제목의 이같은 글이 올라왔다. 정부의 내년도 기술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로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진행하던 과제가 물거품이 되자 10여 년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는 내용이다. 이 글의 작성자는 “동기들이 취업하는 동안 대학원에 진학해서 열심히 연구했는데 그동안 버티게 만들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내년도 R&D 예산 삭감으로 출연연 박사후연구원(포닥)과 학생 연구원들의 감원 우려가 확산되자 정부가 이들 인력을 줄이지 않겠다고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이처럼 현장에서는 불안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출연연의 자체 재원을 인건비로 활용하는 대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연구회 및 소관 25개 출연연과 공동발표를 통해 신진연구자들의 고용불안 해소에 적극 동참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출연연의 연구개발적립금 등 자체재원을 연수직 및 비정규직 인건비에 최우선으로 활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로 인해 연간 7500명의 연수직 및 비정규직 인력이 내년에도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설명이다.
이번에 활용하기로 한 자체재원은 연구개발적립금, 기술료준비금 등 출연연이 쌓아둔 일종의 ‘쌈짓돈’이다. 회계처리 후 남는 잉여금 등으로 구성된다. 통상 이같은 재원은 기관의 고유 연구나 교육훈련 사업, 장비 구매 등에 쓰인다.
출연연 운영을 위해 출연연이 모아온 쌈짓돈을 정부가 인건비 부족에 활용한다는 대책을 두고 비판이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개발적립금은 각 출연연에서 고유 연구를 하려고 할 때 자율성을 갖고 연구할 수 있도록 적립해두는 건데 이걸 정부에서 활용하라고 하니 선심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진연구자들의 자리가 보존된다고 하더라도 줄어든 예산 탓에 과제가 사라지고, 남아있는 과제도 축소해 연구할 수밖에 없게 될 거란 우려도 있다. 한 학생 연구자는 “좋은 연구를 하려면 비싼 시약을 쓰고 여러 차례 시도를 해야 하는데, 정출연 자체 재원을 인건비로 쓰게 되면 결국 연구비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결국에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과학계 관계자는 “당장은 재원이 풀리면 학생이나 연수직, 계약직 분들에 대해서는 숨통이 트일 수 있겠지만 미래에 쓸 돈을 빼서 급한 불을 끄는 것 말고는 더이상 없다”고 비판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날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있는 박사후연구원(포닥)과 학생연구원들의 감원 우려가 확산되자 연구기관의 연구개발적립금 등을 활용해 인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종호 장관은 내년 R&D 예산 중에서 가장 중점 두고 선택한 것이 무엇이냐는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방위원장의 질의에 “미래 인재,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연구현장에서 우려하는 학생연구원 등 인건비 문제는 연구와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내년도 R&D 예산 국회 복원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삭감된 예산의 복원 가능성을 묻는 박완주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정부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이제는 국회의 시간이니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주영창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도 “국회가 충분히 살펴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