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소란스럽다. 국가적으로 긴박하기 짝이 없는 경제 상황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완력만 자랑하는 근시안 행태가 분출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계 가운데 유일하게 올해 협상을 매듭짓지 못한 기아는 살얼음판을 걷는 상태다. 기아 노동조합은 어제 “사측 요청에 따라 12일 15차 본교섭을 진행한다”며 오늘 정상근무 방침을 고지했다. 앞서 전날 예고했던 12~13일 부분 파업 계획은 일단 유보됐다. 그러나 ‘2023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이 순조로울 것으로 내다보기는 어렵다.
노사 갈등을 키우는 것은 ‘고용 세습’ 조항이 담긴 단협 27조 1항이다. 이 조항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장기 근속자(25년 이상)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고 규정한다. 시대착오적이다. 헌법 제11조 평등권에도 반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임금·복지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대물림하도록 보장하는 항목인 만큼 일반 청년층 기회를 박탈하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범사회적 비판도 무성할 수밖에 없다.
사측은 이 조항 개정을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노조에 공문을 보내 “우선 채용 조항이 기아인 전체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측은 ‘노조 죽이기’라고 반발한다. 노조는 “정주영 명예회장부터 정의선 회장으로 이어지는 불법 경영 세습을 먼저 처벌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장경제의 기본인 사유재산제마저 흔드는 셈이다.
기아 노조의 주장은 몽니에 가깝다.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기아에 해당 조항의 시정을 명령했다. 노조 강경파는 ‘고용 세습’이 파업 명분이 될 수 없고 처우 개선의 무기가 될 수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기아와 유사하게 ‘좋은 직장’으로 꼽히는 포스코에서도 칼바람이 불고 있다. 노조는 임단협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했다. 조합원 투표에서 가결될 경우 포스코는 창립 55년 만에 최초로 파업에 돌입해 공장을 멈추게 된다.
공공 부문에서도 파업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인 서울대병원 노조, 경북대병원 노조는 어제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조합원 3800명 규모의 서울대병원 노조는 하루 1000명씩 나눠 파업에 나선다고 한다. 환자를 볼모로 잡아 상급 단체에 힘을 싣는 실력 행사가 공익적인지 묻고 싶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민노총은 다음 달 11일 수십만 명을 모아 대정부 노동자대회를 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노골적인 정치세력화가 아닌가.
한국 경제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그나마 다행은 경기 회복 조짐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어제 발표한 10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 부진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다”고 했다. 귀족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된다.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