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한 때 국내 신발산업 호황으로 주름을 잡던 곳이다. 짚신이 대중적인 신발이었던 1919년, 고무신 생산으로 우리나라 100년 신발산업의 역사가 시작됐고, 그 꽃을 부산에서 피웠다. 신발은 밀면과 국밥에 비견할 만한 부산의 명물이었다.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는 1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신발산업이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크리스틴컴퍼니는 국내 슈즈테크 분야 스타트업으로 2019년 부산에 설립됐다. 신발 브랜드와 제조 공장을 인공지능(AI)으로 매칭하는 플랫폼 ‘신플’을 운영하고 있다.
신플은 크리스틴컴퍼니 사업의 핵심 축으로 올해 1월 오픈했다. 신발 제작을 원하는 브랜드사가 조건을 선택하거나 디자인을 업로드하면 AI기술을 활용해 해당 신발을 가장 잘,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자동으로 매칭한다. 전통 신발산업의 생산구조를 디지털로 전환, 디자인뿐 아니라 생산, 보관, 검수, 물류 등 전 과정을 관리한다.
이 대표가 신플 서비스를 고안한 것은 수도권 브랜드사와 제조공장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수제화와 구두류 산업은 서울 성수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신발 및 패션 브랜드 대부분은 수도권에 밀집하는데 정작 신발 제조설비 공장은 부산·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며 “브랜드 업체가 신발을 제조하기 위해 어디에, 어떤 공장이 있는지도 모른 채 부산 일대에 무작정 내려가 발품을 팔아 공장을 찾곤 한다. 이런 과정에서 신발 제조를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신발 제조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대표는 신발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부산이 업황 쇠퇴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제조기술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오프라인 기반의 부·울·경 지역 제조공장과 온라인 기반의 서울·수도권 브랜드 기업 간 소통의 부재를 신플의 혁신 시스템이 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는 “신발 산업에선 브랜드사가 신발을 제조하려면 에이전시를 거치는 것이 관례다. 결국 에이전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많은 수수료와 긴 생산 리드타임을 감수해야 한다. 에이전시와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조 수량이 적은 브랜드는 생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플은 신발 제조 공정에 최적화된 신발 원단 공장, 봉제 공장, 부자재 공장을 AI가 각각 연결하고, 당장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연결해 제조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플 솔루션을 도입한 뒤 디자인부터 생산 완료까지 평균 8개월 이상 걸리던 것을 2개월 내로 단축하기도 했다. 신플이 업계에 만연한 비효율적인 생산 구조와 폐쇄성, 높은 진입장벽 등을 해소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신플은 올해 플랫폼 론칭 이후 B2B(기업 간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고, 연내 20개 브랜드와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전국 300여 개의 업체가 등록돼 있고, 올해 연말까지 전국 제조공장의 45%가 협력사로 손을 잡을 전망이다. 특히 부산뿐 아니라 서울 성수동 수제화 업계에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유명 브랜드들이 다품종 소량 생산 및 고급화 전략으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공급망을 찾고 있는 최근의 트렌드도 이같은 성장에 한몫을 하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해외 협력사까지 확보하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발 제조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투자자들도 신플의 혁신과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지난해 네이버 D2SF, 시리즈벤처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한세예스24파트너스 등에서 3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받았다. 이 대표는 매년 2배가량 보이던 성장세가 올해 4배 수준이 될 것으로 자신했다.
그는 이 같은 성장세와 함께 존폐 위기에 몰린 국내 신발산업의 회복과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 대표는 “이탈리아가 저가 신발 제조 대신 고가 맞춤형 신발 제조에 집중해 국가 산업 전체를 다시 일으킨 것처럼, 부산도 다품종 소량 생산의 고급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신플이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