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념'을 강조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던 윤석열 대통령의 화법이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민생'과 '소통'을 강조하며 한층 부드러워졌다. 선거 참패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는 만큼 민생 행보를 통해 민심을 추스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저보고 소통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아서 저도 많이 반성하고 더 소통하려고 한다"며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이 직접 소통 부족을 인정하고 '반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윤 대통령은 "소통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추진하면서 소통해야 한다. 소통하면서 계속 주판알을 두드리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18일 참모진과의 회의에서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며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통'과 '반성'을 언급한 윤 대통령은 앞으로 '민생'에 정책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19일 "나부터 어려운 국민들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며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참모진에게 지시했다.
민생 정책을 위한 여당과의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깜짝 오찬을 갖고, 그동안 비공개·비정기로 열렸던 고위당정회의를 주 1회로 정례화하는 등의 제안을 수용했다. 이는 민생 현장에 가까운 당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도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 여당 내부에서 대통령실과의 '수직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일부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선거 이전까지 '이념'을 강조하며 공식 석상 등에서 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윤 대통령은 8월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어갈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 전승 행사, 재향군인회 창설 기념식 등 공개 일정에 참석해 '공산 전체주의 세력', '반국가 세력', '가짜평화론' 등 이념에 초점을 맞춘 강경 발언을 내놨다.
다만, 이같이 이념색이 짙은 발언이 중도층 등 민심 이탈에 영향을 미쳤고, 민생에 동떨어진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최근 윤 대통령의 '화법'에도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선거 패배 직후인 12일 장진호 전투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은 그동안 언급해왔던 공산·반국가 세력을 언급하지 않는 등 이념색을 한층 뺀 기념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두 자릿수 차이의 큰 패배를 겪은 가운데, 선거 이후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0%로 직전 조사(10월 10∼12일)보다 3%포인트(p) 하락했다. 이는 일제 강제동원 배상 등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던 지난 4월 둘째 주 27%로 올해 최저 국정 지지율을 기록한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민생 경제와 관련한 부정적인 평가가 늘어났다. 윤 대통령의 부정평가는 61%로 직전 조사보다 3%포인트 올랐다. 부정 평가 이유는 '경제·민생·물가'(17%), '독단적·일방적'(10%), '소통 미흡'(9%), '전반적으로 잘못한다', '통합·협치 부족'(이상 6%),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인사'(이상 4%),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3%) 등이 꼽혔다.
한국갤럽은 "지난 3월부터 줄곧 부정 평가 이유에서는 대체로 외교, 일본 관계, 후쿠시마 방류 관련 사안이 최상위였는데, 추석 후 2주 연속으로 경제 관련 지적이 1순위"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