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성장률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국 시장이 대외 수요 감소와 부동산 침체로 크게 뒷걸음질 치면서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험은 가계부채가 아닌, 인구 고령화에서 시작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는 한국기업평가, 국제금융센터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열고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직면한 위기에 대해 이처럼 밝혔다. 앞서 피치는 하반기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의 'AA-,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토마스 록마커 피치 아태지역 이사는 "올해 신흥시장의 국가 총생산(GDP) 대비 성장률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하향된 국가는 중국"이라며 "중국은 올 초 리오프닝으로 강한 반등을 예상했지만, 부동산 시장과 GDP 둔화로 부채 대응 능력도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0%에 머물렀던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내년부터 2.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레미 주크 피치 책임 디렉터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스위스, 호주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하나, 한국은 완충 장치가 있어 전제척으로 구조적인 위협요인에 대응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가계부채가 소비와 성장에 큰 제약이 될 수는 있겠지만, 구조적인 금융 리스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비 측면에서 가계가 소비 진작에 쓸 돈을 부채 상환 이자에 쓰는 것"이라며 "금융 안정성에서 보면 영향은 제한적으로, 한국이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할 여력은 존재한다"고 했다.
이날 현장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한국 경제가 중단기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위협으로는 '인구통계와 생산성으로 인한 역풍'(52%)이 지목됐다. 주크 책임은 "인구 변화의 부담이 한국에 가장 크게 나타날 것이고, 향후 성장에 대한 부담요인"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금융기관 신용등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익스포져(위험 노출도)를 중장기적인 걸림돌로 봤다. 금융업권의 부동산PF 대출잔액은 2020년 말 92조5000억 원에서 2021년 말 112조9000억 원, 올해 6월 말 133조1000억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기관 별로 보면 은행과 보험 업종이 전체 PF의 60%를 차지하지만, 증권사, 여전사(캐피탈), 저축은행에 비해 사업성이 우수하고,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익스포저 비중은 크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리스크를 가장 높게 봤다.
이지웅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에 가장 취약한 금융기관은 저축은행 및 신용협동조약"이라며 "저축은행은 PF 익스포져나 개인신용대출 건전성 우려 등이 높아지며 '부정적' 등급 전망 조정이 가장 많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연초 이후 증권(23개 사)과 캐피탈(27개 사)에서 '부정적' 전망을 부여받은 곳은 모두 2곳이었다. 반면, 저축은행은 총 11개사에서 5개사(키움예스저축은행·바로저축은행·오케이저축은행·웰컴저축은행·키움저축은행)에서 부정적 전망이 발생했다.
이처럼 증권, 캐피탈과 저축은행 간 리스크 격차가 벌어진 데는 '브릿지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실장은 "PF 중 브릿지론의 비중을 보면 증권과 캐피탈은 각각 33%, 39%인데 반해, 저축은행은 58%로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재 가동 중인 부동산 PF 대주단 협약이 내년까지 지속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왔다. 본 PF에서 브릿지론으로 넘어가는 기간은 통상 1년 6개월 정도 걸리는데, 올해 말이면 2년을 넘기게 되면서다. 작년 말 정부 지원으로 연장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브릿지론으로 넘어가지 못한 사업장은 완공 후에도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실장은 "현재도 차환 금리가 10%를 넘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연장이 가능할지는 회의적으로 본다. 올해보다 내년에 PF쪽 부실화가 더 나타날 수밖에 없다"라며 "다만 작년같은 레고랜드 수준을 아니고, 개별 회사별로 손실 폭이나 PF 익스포져가 큰 곳은 자본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