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브랜드 힘못써…가격 최우선
韓기업 ‘고급’이미지 전략으론 한계
학교 연구실 5분 거리에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때때로 찾아오는 손님에게 커피 대접하기 편하다. 그 매장 건너편에는 조그만 커피숍이 있는데 요즘 말로 가성비 끝판왕이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약간의 산미가 있는 아메리카노를 즐길 행복을 준다. 전 영역에 걸쳐 미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커피 향기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 10년간 중국 내 스타벅스 매장은 10배 증가했다. 스타벅스는 2023년 8월 현재 중국 전역에 약 6500개의 매장을 열었다. 커피든 달달한 음료든 한 손에 종이컵을 들고 거리를 걷는 모습은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익숙한 ‘문화’가 됐다.
모방의 나라 중국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그냥 놔둘 리 없다. 루이싱커피가 스타벅스 코앞에서 보란 듯 장사를 시작했다. 가격은 스타벅스의 절반. 2017년 첫 사업을 시작한 후 올 8월까지 1만 개가 넘는 매장을 열었다. 그런데 작년에 루이싱커피의 전직 경영자들이 모여 쿠디커피란 회사를 만들었다. 이들도 똑같은 영업전략을 사용한다. 루이싱커피 앞에 매장을 열고 가격은 루이싱의 3분의 2로 낮췄다. 1년 만에 매장 수가 5000개를 넘었다. 가성비 커피숍이 스타벅스를 몰아붙인다.
가격을 둘러싼 경쟁은 커피뿐만이 아니다. 중국 온라인 시장의 양대 산맥은 알리바바와 징둥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3위 업체인 핀둬둬의 추격이 매우 거세다. 올해 2분기 실적에서 핀둬둬는 매출 증가율 66%, 순이익 증가율 47%의 성과를 거뒀다. 반면 알리바바와 징둥의 매출 증가율은 10% 내외에 그쳤다. 핀둬둬는 공동구매 방식을 내세워 경쟁업체보다 좀 더 싸게 판다. 핀둬둬의 글로벌 자회사인 테무(Temu)는 미국 시장에서 초저가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쇼핑앱이다.
싼 제품만 잘 팔린다. 중국 소비자들이 웬만하면 물건을 사지 않고, 사더라도 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스타벅스는 중국 매장의 매출액은 작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고객 1인당 소비액은 오히려 1% 하락했다고 밝혔다. 치열한 가격 경쟁에 나선 루이싱커피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부동산 부문을 중심으로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민간의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이 ‘짠내 소비’의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경기적인 이슈가 해소된 이후에도 짠내 소비가 계속될 분위기다. 잠깐의 엄살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자의 의사결정이라는 시각이다. 맥킨지(2023 China Consumer Report)에 따르면 중국 소비자들은 평균적으로 매일 두 시간씩 숏폼 영상을 시청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가성비 높은 제품을 어디에서 어떻게 구매할지 판단한다. 이제 제품 인지도만으로 중국 시장에서 버티긴 쉽지 않다. 중국의 대표적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잡은 안타는 가성비 제품을 내세워 영원할 것 같은 나이키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맥킨지는 중국 브랜드의 인기가 높아지고, 외국 브랜드가 외면받는 현상을 일시적인 또는 애국 소비의 여파로 해석해선 곤란하다고 경고하였다.
한국 기업은 그동안 중국 도시 중산층을 주요 고객층으로 설정하고 진출전략을 마련해왔다. 그런데 이들의 소비패턴이 프리미엄 이미지보다는 가성비를 찾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중국 기업은 남들보다 싸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중국 내수시장이라는 다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중국 기업과 한판 대결을 벌이느냐, 아니면 제3국의 중립지대 경기장에서 자웅을 겨뤄봐야 하느냐가 우리 기업의 고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