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어제 조간신문 사진기사의 중심에 섰다. 농수산물 물가 점검을 위해 시장을 찾아 배추를 들어 보이는 사진이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특등급 사과 10㎏ 경락가가 6만3000원이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1년 만에 3.5배로 뛴 가격이었다고 한다. 물가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장바구니 물가만이 아니다. 한국은행의 통계도 물가 오름세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은은 어제 소비자들의 향후 1년간의 물가 전망을 보여주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8개월 만에 반등했다고 발표했다.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3.4%로 지난달보다 0.1%포인트 올랐다.
한은에 따르면 금리 수준 전망지수도 118에서 128로 한 달 사이에 10포인트 올랐다. 2021년 3월(10포인트)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이 지수는 “6개월 후 금리가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고 답한 사람이 하락 예상자보다 많으면 100을 웃돈다. 한은이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6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금리가 앞으로 뛸 것으로 보는 시중 견해는 외려 2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결과다.
앞서 전날 나온 9월 생산자물가도 121.67(2015년=100)로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품목별로는 농림수산품, 공산품, 전력·가스·수도·폐기물 등이 두루 상승했다. 수입품까지 포함해 가격 변동을 측정한 국내 공급물가지수를 보면 원재료, 중간재, 최종재 물가가 다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두 물가 당국에 적잖은 부담을 안기는 지표다. 특히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
한은이 6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택했던 것은 그래도 될 만큼 대내외 여건이 여유로웠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정을 비롯한 각종 외생변수는 외려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기 일쑤였다. 한은은 이를 익히 알면서도 시간을 끌어왔다. 국가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해서였다. 특히 부동산 거품과 관련한 민간부채를 의식한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소규모 개방 국가가 마주하는 현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고유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압박이 생각보다 장기화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한은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엉뚱하게 ‘영끌’·‘빚투’ 심리가 불붙은 현실도 우려를 더한다.
국가 경제에 극약이 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결국 기준금리 인상이란 카드를 책상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는 정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9일 동결 결정을 발표하면서 “물가가 예상 경로보다 올라 국가 경제 전체를 위해 어떤 것을 희생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는 경우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영끌족을 겨냥해 “한은이 통화정책을 너무 느슨하게 해서 통화정책으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경고도 했다.
이 총재 경고가 무색하게도 시장 움직임은 다르다. 한은 통계마저 그렇다. 통화당국은 이미 허수아비로 취급되는 감이 없지 않다. 한은이 가진 무기는 오로지 기준금리라는 점을 새삼 무겁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