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격랑에 휩싸였다. 코스피는 2300선, 코스닥은 750선이 무너졌다.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후폭풍도 모자라 미국 국채 쇼크와 미국 증시 급락, 고금리 장기화, 전쟁 리스크 등 외부 겹악재까지 맞은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증시가 대내외적 불확실성 속에 변동성이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1% 내린 2299.08에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올해 1월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021년 7월 6일 기록한 종가 기준 코스피 사상 최고치(3305.21)에 비하면 30% 넘게 빠졌다.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던 ‘코스피 3000 시대’는 이제 남의 얘기가 됐다.
이날 코스닥지수 또한 전 거래일보다 3.50% 하락한 743.85에 장을 마쳤다. 테마주 랠리에 힘입어 지난달 초만 해도 900선에 머무르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날 코스닥 대장주 에코프로비엠(시총 1위)과 에코프로(시총 2위)는 각각 6.29%, 10.00% 하락 마감했다.
지수 하락의 중심에는 미국 장기 국채금리 급등이 있다. 미국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국채금리가 급등하자 미국 증시가 하락하고, 나아가 국내 증시 또한 하락하는 결말을 맞이한 셈이다.
실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3일(현지 시각) 16년 만에 5%를 찍었다. 이후 서서히 하락하던 10년물 금리는 4.9%를 또다시 돌파하며 5%에 근접했다. 미국의 모기지(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치솟는데도 9월 신규주택 판매가 늘어나면서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실적 부진 등이 겹치며 미국 증시는 출렁였다. 간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05.45포인트(p)(0.32%) 하락한 3만3035.93에 거래를 마쳤다.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500지수는 60.91p(1.43%) 내린 4186.77, 나스닥지수는 318.65p(2.43%) 내린 1만2821.22에 장을 마감했다.
이처럼 미국 증시 여파에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셀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과 기관은 각각 2478억 원, 1709억 원 순매수했지만, 외국인은 4540억 원 순매도했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는 베어마켓(약세장)에 진입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발(發) 리스크를 필두로 대외 악재가 커져 증시 부진이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떠오르고 있다”며 “전쟁 불확실성이 미국 재정 불안을 높이고, 미국 하원의 정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시장은 위험 프리미엄을 높이는 중”이라고 했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전쟁이 계속되고 휴전의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므로 당분간 증시가 좋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대외적인 변수나 투자심리에 악재가 되는 요인이 계속 존재하면 또 추가로 더 빠지거나, 반등하더라도 되게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비관적 전망 속에도 희망은 있다. 결국 미국이 기준금리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서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금리 동결을 하면서도 여지를 줬다는 점에서 금리가 크게 뛸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다음 달 2일 연준에서 시장을 달래주는 코멘트가 나오길 기대해볼 만하다”고 했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상황 지속이 불가피해 보이고 기업이익 훼손 우려를 빌미로 주식시장에 험로를 조성하겠다”면서도 “금리가 안정화된 직후 상승을 재개할 동력은 충분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