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한 점심시간, 각자의 테이블 위 저마다의 다양한 메뉴들이 채워졌는데요. 하지만 모두의 대화 내용엔 이 사람만이 가득했습니다. 직장동료도, 학교 친구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도… 다들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 사람, 대한민국에 정말 자기 이름 석 자 거나하게 남긴 전청조 이야기입니다.
불과 일주일 전. 전청조는 한 매체를 통해 예비 신부인 남현희 전 펜싱 국가대표 선수와 함께 등장했는데요. 남현희보다 15살 연하의 재벌 3세 사업가라고 소개한 그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물음표를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고 뜬구름 잡는 듯한 배경 설명은 그저 당황스러웠는데요. 특히 전청조의 겉모습이 더욱더 의심을 불러왔죠. 짧은 머리에 슈트를 입었지만, 얼굴은 여자 그 자체였거든요.
이 의문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 사진과 과거 행적까지 파헤쳐졌습니다. 공개된 지 이튿날 이미 전청조의 신상과 과거가 언론과 커뮤니티, SNS를 통해 퍼졌죠. 그리고 그 실체는 너무도 경악스러웠습니다.
설명했던 배경은 모두 거짓이었고, 성별 또한 여자였는데요. 그가 외쳤던 A 그룹 혼외자는 앞선 사기꾼들이 사용했던 그대로였고, “승마 선수였다”,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명 상장사 대주주다” 그 어떤 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미 사기 전력으로 징역형을 살았던 전과자였는데요. 이미 남현희와 만나던 중에도 여럿 사기 피해자가 나온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남현희 또한 26일 자신이 머물고 있던 모친의 집에 찾아온 전청조를 스토킹 혐의로 신고하며 ‘손절’을 외쳤죠. 남현희는 이후 언론에 심경을 밝히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전청조를 안다는 지인들과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그와의 일화와 문자, 전화 내역 등을 공개하면서 그를 향한 불신의 벽은 날로 높아지고 견고해지는 중이죠. 그 가운데 전청조가 보낸 메시지로 알려진 문구가 대박을 쳤는데요. 지인과의 대화, 댓글, 커뮤니티, SNS 곳곳에서 빠짐없이 넘치게 등장하는 중이죠.
전청조가 남긴 엄청난 ‘밈’의 탄생입니다.
전청조는 남현희와 함께 살던 시그니엘 주민인 유튜버 A 씨에게도 접근했는데요. JTBC에 따르면 전청조는 시그니엘 라운지에서 A 씨에게 접근해 자신을 재벌 3세라고 주장하며 남현희를 아내라고 소개했습니다. 전청조는 A 씨 지인들과 친분을 쌓은 뒤, 투자 명목으로 돈을 받았는데요. A 씨는 피해자가 5~6명에 피해액은 10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했죠.
A 씨는 전청조와 함께 나눈 메신저도 공개했는데요. 자신을 미국 출신 재벌 3세라 소개한 것을 믿게 하려는 듯 곳곳에 짧은 영어를 넣은 메시지였죠. 공개된 메시지에는 “OK. 그럼 Next time에 놀러 갈게요. Wife한테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더니 OK 했어서 물어봤어요. But your friend랑 같이 있으면 I am 신뢰예요”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어리숙하면서도 헛웃음을 유발하는 ‘사짜’ 교포 말투에 모두가 꽂힌 겁니다.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 인스타그램 등등 그 어떤 게시물에도 모두 이 드립과 밈으로 가득한데요. 다들 어쩜 이리 응용력이 좋은지 감탄스럽기 그지없죠.
정말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 아닐 수 없는데요. “next time에 휴진할게요. but 우리 patient와 함께라면 I am 행복이에요”라며 병원 홍보에도 사용됐고, 유튜브에서 새로운 게시물들은 모두 ‘I am’으로 뒤덮였죠. 2023 최고의 밈으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는 반응들입니다.
심지어 인기 밈의 기본공식이라는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일명 없없무)’까지 통과한 작품(?)이죠. 2010년 3월 ‘오마이텐트’ 특집 방송분에서 노홍철이 “I am 간절”로 이미 사용한 전적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 전청조의 말투는 ‘동물의 숲’에서 배웠다는 추측까지 나왔는데요. 사하라가 쓰는 말투랑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이죠. 거기다 이 사하라 또한 러그를 비싸게 파는 사기꾼이란 점에서 ‘평행이론설’까지 대두(?)됐습니다.
밈은 유통업계에도 흘러갔죠. 한국투자증권은 애널리스트가 현대모비스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내면서 ‘I am 신뢰에요’라는 문구를 리포트 제목으로 응용해 썼고요. 전자상거래 업체 위메프도 최근 특가 휴지 판매에 ‘I am 특가에요~’ ‘Next time은 없어요’라는 문구를 활용했습니다.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엄청난 침투력의 밈이 아닐 수 없죠.
이 밈은 색다른 기록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요. 전청조가 쏘아 올린 작은 밈. 4월 발매된 걸그룹 아이브의 곡 ‘I AM(아이엠)’이 이날 온라인 음원 차트 상위에 갑자기 진입을 한 거죠. 물론 이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회자되긴 충분했습니다.
전청조의 유산(?)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는데요. 전청조가 학창시절 방문했다는 강화도의 한 돈가스집이 때아닌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앞서 유튜버 이진호가 전청조와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제보자의 말을 전하며 업소명에 ‘뉴욕’이 들어간 돈가스집을 언급한 바 있는데요.
이후 이 돈가스집은 전청조의 단골집으로 알려지며 수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돈가스집의 이름은 바로 ‘뉴욕뉴욕’. 전청조가 살았다고(?) 주장하던 뉴욕이 포함됐는데요. 해당 제보자는 “학창 시절 그 가게가 굉장히 유명해서 많은 여중생이 갔다. 뉴욕에 한이 맺혀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라고 답하며 뜨거운 반응을 불렀죠.
해당 돈가스집 사장은 생각지도 못한 유명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이곳이 전청조의 단골집이 맞다”고 당당히(?) 밝힌 사장님은 본래 내년까지만 영업하기로 했으나 이번 논란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폐업 철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죠. 이 집의 인터넷 후기에 “OK. 이 집은 I am 신뢰예요”가 가득한 건 당연한 순서였고요.
이 강력한 밈은 한동안 계속될 예정인데요. 한동안은 전청조의 그림자 같은 밈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듯 보이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사기 범죄자의 말투를 각종 마케팅에 활용했다는 비판인데요. 또 현재까지도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 그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얘기도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경각심을 주는 멘트라는 평도 있는데요. 더는 이런 사짜에 휘둘리지 말자는 ‘자조 섞인 한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더 안타까운 건 이 밈이 그의 사기의 끝이 아니라는 건데요. 하루가 멀다하고 추가되는 이야기들을 볼 때, 아직 놀란 입을 다물 시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